작은 운명 (41)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홍 검사는 맹순의 남편인 공국이 인경과 연애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하기 시작한 다음에 맹순이 확실한 증거를 잡기까지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나도 한 때 배드민턴을 치러 남편하고 같이 다녔기 때문에, 인경이라는 여자도 알고, 같은 배드민턴 회원들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나와 친한 여자 회원 한 사람에게 부탁을 했어. 가끔 치킨집에 가서 동향을 살펴달라고.”

공국과 인경은 배드민턴을 칠 때에도 거의 함께 쳤다. 공국은 부인인 맹순과는 몇 년 전부터 각방을 쓰면서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그것은 맹순이 나이를 들면서 잠자리를 하기 싫어졌고, 공국도 자연히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맹순과 잠자리를 하고 싶지 않아졌기 때문이었다. 육체관계는 남자나 여자나 나이를 먹고, 특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생활에 시달리다 보면 자연히 욕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점점 덜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자는 그런 경향이 있다. 남자와 달라서 성관계에 대한 욕구가 적은 여자도 있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이는 더 이상 남녀로서, 부부로서 정이 없어졌고, 그냥 단순히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그냥 사는 것이었고,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혼할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공국은 나이가 들면서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건설회사에 다닐 때는 일이 바쁘고, 돈을 버는 일에 매진했기 때문에 삶에 권태를 느낄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술을 좋아해서 친구들과 또는 거래업자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노래방이나 다니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가끔 노래방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도우미와 성관계를 가지기도 했지만, 고정적으로 애인을 두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건설회사를 그만 두고, 나이가 50살이 넘게 되니,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과연 제대로 살아온 것인지 회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맹순과 결혼할 때에는 정말 맹순을 사랑해서 죽기살기로 목숨을 걸고 구애를 해서 결혼도 했지만, 막상 결혼해서 몇 년이 지나니까 애정도 식고 담담해졌다.

그러나 먹고 사는 것이 바쁘고 힘이 들어서 다른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자녀 교육에 신경 쓰다보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이들도 공국의 뜻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크게 비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어서 그 때문에도 부부 사이는 더욱 냉냉하게 되는 것을 느꼈다.

특히 딸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학교 다니는 남자 친구와 성관계를 가진 일을 알게 된 공국은 그것을 전적으로 부인 탓으로 돌렸다. ‘맹순의 피가 흘러서 여자 아이가 끼가 있어 그렇게 된 것이다. 맹순이 처녀 때도 이미 남자와 성관계를 하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내가 끼어들어 또 나와 성관계를 한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서 나온 딸이니까 저렇게 몸관리를 못하는 것이다.’라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끼가 있어도 공국이 맹순보다는 백배 더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논리를 여자의 논리를 초월하는 무식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공국은 치킨집을 시작하면서 인생관이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배드민턴을 치러 다니면서 여자들과 같이 운동을 하니까 이상하게 성관계를 하고 싶은 욕정이 생겼다. 그렇다고 집에서 맹순과는 오래 동안 관계를 하지 않고 지내서 새삼스럽게 하기도 싫었다.

배드민턴장에서 여자회원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공국은 자연스럽게 관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러다가 인경과 관계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운동만 열심히 하고, 가끔 회식을 하거나 노래방을 같이 가도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아주 예외적으로 이상한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어떤 조직이나 단체, 모임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한편 인경은 남편과 이혼하고 3년이 지난 때에 공국을 만나게 되었다. 인경은 35살에 결혼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다녔다. 부모님이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부도가 났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는 공부를 잘 했는데,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부모님 부양을 해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외동딸로 귀엽게 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사업에 망하고, 중풍마저 당해 일을 못하게 되자, 인경은 돈을 벌면서 부모님과 살았다. 그래서 회사에 취직해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사장이 술을 먹인 후 호텔에 끌고가서 간음을 했다. 그때 인경은 너무 억울해서 자살을 하려고까지 마음 먹었다.

인경이 늙은 사장에게 당한 경위는 이랬다. 인경이 회사에 취직해서 6개월쯤 지난 때였다. 갑자기 회사 사업이 잘 돼서 직원을 몇 사람 더 뽑았다. 모두 대졸 출신이었고, 여직원들도 외모가 다 괜찮았다. 그 때문에 인경은 상대적으로 콤플렉스를 느꼈다. 공연히 다른 직원들이 인경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외모 때문에 콤플렉스도 느끼고 있어서, 강남에서 성형수술을 하려고 알아보니 천만원 이상의 견적이 나왔다. 성형수술은 불가능했다.

그러고 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뺑소니차에 치어 병원에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인경은 너무 절망했다. 왜 자신에게는 이런 상상도 못할 불행이 닥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늘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성당에도 열심히 다니는데, 왜 아버지 사업도 부도나고, 어머니까지 교통사고를 당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밤에 뺑소니차에 치어서 범인을 잡을 수도 없었다.

어머니 때문에 3일간 출근을 못하고 있다가 회사에 출근하니 더욱 마음이 가라앉았다. 이러다가는 이 회사도 잘못하면 못다닐 것 같았다. 그러고 있는데, 퇴근 시간에 사장실로 오라는 호출이 왔다. 인경은 가슴이 철렁 가라앉았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사장은 인경에게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뺑소니차에 치었다면서? 얼마나 놀랬어? 아직 범인은 못잡았고? 이것은 약소하지만 어머니 병원비로 써요.” 그러면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인경은 처음에는 사양했으나, 사장이 별로 큰 돈이 아니라고 하면서 받으라고 강권하기에 그냥 들고나왔다. 1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세장 들어있었다. 인경은 놀랐다. 하지만 다시 사장실에 들어가서 돌려준다고 할 용기도 없었다. 그냥 고맙게 생각하고 받기로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다음, 사장은 퇴근 시간에 인경에서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하면서 같이 가서 비서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인경은 아무 의심 없이 사장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에 어머니 병원비로 거액을 주었기 때문에 더욱 의심하지 않고, 고맙게 생각하고 사장을 도우려고 따라갔다.

강남에 있는 호탤로 가서 로비라운지에서 외국 손님 한 사람을 만나서 30분 정도 일을 보았다. 인경이 볼 때 특별히 비즈니스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간단히 일을 마친 다음 사장은 인경에게 저녁을 먹고 가자고 했다. 인경은 여기서도 거절하기 곤란했다.

호텔 일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인경으로서는 이런 고급 호텔 일식당에서 좋은 사시미를 먹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정말 맛이 있었다. 사장은 인경에게 술을 권했다. 사장 자신도 많이 마시면서 인경에게 계속 권했다. 인경은 술이 약한 상태에서 사장이 주는 술을 받아마시다 보니 취했다.

인경이 눈을 떠보니 그 호텔 룸에 자신이 침대에서 발가벗은 채 누워있었다. 깜짝 놀랐다. 사장은 침대에 메모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있었다. ‘일어나면 전화해 줘요.’ 사장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인경은 사장이 술에 취한 자신에게 나쁜 짓을 한 것을 확인했다. 침대 시트에 붉은 흔적도 맺혀져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안에도 남자의 그것이 남겨져 있었다. “이런 악마! 이런 나쁜 인간!” 인경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인경은 혼자 울다가 옷을 입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늦은 인경에게, “회사 일이 바빴던 모양이구나? 피곤해서 어떻게 하니? 아이 불쌍하다. 인경아!‘ 하면서 팔로 껴안았다. 순간 인경은 쓰러질 뻔했다. 하지만 인경은 이를 악물었다. ”아니 내가 쓰러지면 안 돼. 불쌍한 아빠와 엄마를 돌봐야 하잖아.“

인경은 악마같은 사장을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부모님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고 돌아가실까봐 신고할 수 없었다. 사장은 워낙 나쁜 사람이어서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다. 만일 인경이 문제 삼으면 돈을 300만원 주고 동의를 받아서 한 것이라고 미리 돈을 주었던 것이었다. 그때 인경은 나이가 21살이었는데, 사장은 61살이나 된 사람이었다. 인경과 무려 40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악마였다.

인경의 몸을 빼앗고 사장은, “인경은 내가 평생 책임질 테니, 내 곁에서 있어라. 그러면 고생하지 않게 해주고, 부모님도 편하게 살 수 있잖니?”라고 징그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그 사장은, “인경이 내게 처녀를 바쳤으니, 내가 특별히 사랑하면서 챙겨줄게.”라고 했다.

인경은 그때 늙고 악마와 같은 사장에게 처녀를 빼앗긴 것을 너무 억울해했다. 인경은 어렷을 때부터 자신의 처녀는 오직 사랑하는 남자만을 위해 간직하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던 여자였다. 특히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성당에 다니기 시작해서 남다른 신앙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처녀성에 대해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인경은 어린 나이에 사장이 돈은 있는 사람이고, 부도나고 병든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사장 애인으로 지내는 것도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며칠 후 회사 동료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고 모든 것을 단념해버렸다. “우리 사장은 여자를 너무 좋아해서, 지금까지 건드린 여자가 20명이나 된데. 정력이 너무 좋아서 많은 여자가 필요한 사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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