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단상> (1)

 

현대 사회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다. 특히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서울의 한복판에 서면, 개인은 아주 초라하고, 정말 작은 개미와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남산에 올라가 서울을 바라보면 더욱 그렇다. 그 높은 123층의 잠실타워도 그냥 작은 막대기처럼 보인다.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 숲도 내 작은 주먹안으로 잡을 수 있다.

 

<사랑의 단상> (2)

 

TV를 틀면 잘 난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여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이야기한다. 얼굴도 잘 났고, 음성도 매끄럽고, 매너도 좋다. 아는 것도 너무 많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한 AI 로봇이다.

 

오늘 서초동에서 택시를 타고 성동구청으로 갔다. 점심 식사 후에 택시를 탔기 때문에, 따뜻한 4월의 날씨에 졸음이 왔다. 졸리운 눈으로 창밖으로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차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사랑의 단상> (3)

 

택시 기사와의 짧은 대화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코로나 때문에 힘이 든다” “세상 살기가 힘들다” “손님들이 줄었다나는 졸린 상태에서 나름대로 성의껏 대답을 한다.

 

차는 한강 다리를 건넌다. 시원한 강물을 보니 순간적으로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때문에 잠이 완전히 깼다.

 

<사랑의 단상> (4)

 

오래 전에 들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이 들어 사랑에 빠진 중년의 남녀가 서로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처음부터 불안해하고, 만나도 행복하지 못하고, 늘 우울해하고, 끝내 두 사람 모두 공황장애에 빠진다.

 

두 사람에게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었다. 단순한 집착이고, 불행의 열쇠였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사랑해야 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랑의 단상> (5)

 

스토리는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이 1년 만에 끝이 나는데, 그것은 남자의 아내가 상간녀를 본격적으로 괴롭힘으로써 불륜의 관계가 종식되고, 두 사람은 모두 헛된 사랑의 한계를 깨닫고, 사랑의 허망함과 인간의 연약함에 무릎을 꿇는다.

 

술을 마시면서 아주 지루하게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나는 그때 남녀 사이의 사랑이란 육체적으로 보면 아주 더럽고, 동물적인 섹스를 위한 욕정의 표현이라고 느껴졌다. 그런 사랑을 했다고 하는 남자의 얼굴과 음성이 발정난 숫캐처럼 보였다.

 

<사랑의 단상> (6)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 남자와 여자의 만남을 단순하게 사랑으로 인식하고 규정하는 것은 단세포적인 접근이다. 사랑은 섹스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섹스는 사랑이 아니다. 섹스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에서 모든 사랑의 불행은 시작한다.

 

사랑은 정신적인 작용이고, 정신의 영역에서 잉태되고, 성장하며, 소멸한다. 그런 사랑만이 영원히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자리잡고 기억된다.

 

<사랑의 단상> (7)

 

날이 갈수록 진정한 사랑을 찾기 어렵다. 특히 오늘날처럼 남자와 여자 사이의 차이가 없어지고, 유니섹스화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사회에 나와서는 남자와 여자를 성적으로 대하면 그 자체로 추하게 된다. 성희롱이 되거나 성추행이 된다. 스토커로 신고된다. 사랑을 함부로 표현되고 불법이 되는 세상이다.

 

<사랑의 단상> (8)

 

유일하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에서 얼굴을 보고 소통하다 보면 연애감정이 싹트고, 서로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공간이고, 수많은 거짓과 위선, 가식이 판을 치고 있다. 실제 만나보면, 대부분 실망스럽고, 나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다. 신체적으로 건강한지도 알 수 없고, 심리적으로 정상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사랑의 단상> (9)

특히 사랑에 대한 그의 인식과 관념, 사랑에 대한 가치와 태도를 확인할 수 없다. 사랑을 어느 정도 할 것인지, 그 사랑은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것인지, 사랑 이외의 다른 가치와 비교하여 사랑에 얼마나 우월적 가치를 인정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뿐만 아니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섹스로 이어지는 모습도 사랑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현실이다.

 

<사랑의 단상> (10)

 

깊이 없는, 표피적인 육체적인 사랑에 쉽게 빠지고, 단순한 동물적인 욕정의 충족을 반복하면서 그것이 사랑인 줄 착각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는 절망한다.

 

그렇다고 정신적인 사랑을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너무나 불완전하고, 너무나 비인간적인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택시는 목적지인 성동구청 앞에 섰다. 나는 교통카드로 결제를 하고 내린다. 구청 건물에는 <서울 교육특구, 성동>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다. ‘그래, 교육이 중요한 거야!’ 나는 중얼거리면서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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