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엄청난 무리였다. 그게 이번 산행에 대한 결론이다.

 

금요일 점심은 삼성생명 지하 1층에 있는 일식당 미야꼬에서 했다. 업무 때문에 L 부장을 만났다. 다이에 앉아 초밥을 시켰다. 다이가 일본말인데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나중에 멍게로 만든 밥이라고 하면서 별미를 내놓았다. 맛이 특이했다. 전복 내장으로 만든 밥은 약간 비린내가 나는데, 멍게로 만든 건 그런 냄새가 없었다.

 

L 부장은 무척 바쁜 사람이다. 식사 시간 도중에서 연신 핸드폰으로 통화를 한다. 그만큼 찾는 전화가 많다. 주방장과 대화를 해보니, 요새는 일식당이 잘 안된다고 한다. 사람들의 접대문화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술도 적게 마신다. 그래서 비싼 일식집은 손님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오후에 최 박사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최 박사는 TV와 라디오에 많이 출연한다. 어느 연기자와 함께 와서 이런 저런 문제를 상의했다. 워낙 부지런해서 하는 일도 참 많은 사람이다. 성격도 아주 좋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한다. 함께 좋은 일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구체적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5시 반에 엘지아트센터에서 박 변호사의 따님 결혼식이 있어 참석했다. 연수원 동기인 최 부장을 만났다. 박 변호사와는 연수원 동기일 뿐 아니라, 옛날에 여의도에서 함께 살아 이웃사촌이었다. 꽤 오래 됐는데도 그 모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걸 보면 사람이란 25세 정도에 형성된 성격이나 인격이 그래도 평생을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밤 10시 반에 서초역 부근 수협은행 앞에서 버스를 탔다. 지리산 산행을 가기로 한 것이다.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무박2일 등산에 끼기로 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밤 10시에 출발한다고 잘못 알고 10시까지 도착했으나, 아무도 없어 전화로 다시 확인하니 10시 반이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30분간을 길에서 하는 일 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그런 여유 있는 30분의 시간이 단순한 낭비는 아니었다. 양재역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구경을 했다. 무릅 밴드를 사려고 약국을 찾았으나, 약국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한 군데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끝내 무릅 밴드는 사지 못했다.  

 

그동안 등산 다닐 때마다 느꼈던 등산 등에 쓸 지갑을 구한다고 하면서 미루어 왔는데, 양재역 지하철에 들어가니 지갑 파는 곳이 있어 만원짜리 접는 지갑 하나를 샀다. 이번에 써 보니 매우 편리했다. 평소에 들고 다니는 지갑은 등산 때 땀에 젖어 가죽이 변하는 것 같기도 하고, 구겨지기도 해서 불편했다. 양복에 넣고 다니는 지갑과 등산용 지갑은 다른 것이다.

 

버스는 새벽 3시경 목적지에 도착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밀금폭포 부근 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마침 등산대장에게 동대문시장에서 사가지고 와달라고 전화로 부탁한 야간등산용 후랫시를 받았다. 머리에 쓰는 것인데 7만9천원이다. 불이 아주 밝았다. 머리에 쓰니 편리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산행에서는 지난 번 설악산 야간 산행때 사용했던 손후랫쉬도 함께 가지고 등산을 했다.

 

날씨가 쌀쌀했다. 잠바를 가지고 가지 않았더라면 고생을 할뻔 했다. 밤날씨는 산에 들어가니 더욱 쌀쌀했다. 10월 중순의 가을날씨의 위력을 느꼈다. 처음에는 선두에 섰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맨 마지막이 되었다. 등산을 할 때 선두에서 떨어지면 곤란하다.

 

세상 사는 일도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조직생활을 할 때 동기들 중에서 선두에 서는 것과 뒤에 처지는 것은 산행과 비슷하다. 어차피 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처져 있다는 생각이 결코 유쾌하지 않다.

 

세석 대피소에 이르니 6시 반이 넘어 날이 훤해졌다. 원래 사람들은 촛대봉에 가서 일출광경을 본다고 했는데 오늘은 구름이 많아 일출광경을 보지 못했다. 날씨가 어두워지는 것도 한 순간이고 환해지는 것도 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후랫쉬가 필요없게 되었다.

 

깜깜한 밤에 산길을 걸을 때 후랫쉬에 우리는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래서 너무나 소중했다. 그러나 날이 조금 밝아지자 후랫쉬는 아무 필요 없는 귀찮은 물건으로 바뀌었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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