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산 속에서 한 밤중에 후랫쉬를 꺼보았다. 무시무시한 암흑세계다. 그런 상태로 밤을 새우게 되면 무서워도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겠다. 머리 위 후랫쉬는 비취는 구멍이 작아도 아주 밝기가 강했다. 걸으면서 아주 넓은 반경을 비춰주고 있었다.
회원 중 한 사람은 미국에서 왔다면서 지리산 산행을 몇 차례 했다고 해서 이번 산행에 넣어 주었는데, 올라가면서 계속 말을 하기 시작해, 대장이 산행 때 오르막길에서는 가급적 말을 하지 않아야 호흡도 조절이 되고,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분은 계속 대화를 하면서 올라가다가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그냥 가버렸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밀금폭포 부근 매표소에서 세석 대피소를 거쳐, 촛대봉으로 올라갔다. 촛대봉에서 삼신봉을 거쳐, 연하봉에 올랐다. 그 다음 장터목 대피소에 이르렀다. 장터목 대피소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아침식사를 했다. 날씨가 쌀쌀해서 준비해 간 음식을 풀밭에서 먹는 것이 불편했다.
장터목 대피소에 들어가니 드러누워 눈을 붙일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그곳에 맨마루바닥에 누워 눈을 붙였다. 잠을 자지 않고 산행을 하니, 몸도 무척 피곤하고 졸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곳에서 30분 정도를 자고 나오니 우리 등산팀 중에서 맨 끝 후미가 되었다. 나와 또 한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천왕봉에 올라가는 길은 무척 험하기도 하고, 힘이 들었다. 아주 지친 상태였다. 천왕봉에 올라가기 직전에 누가 내 이름을 불러 쳐다보니 L 씨였다. 창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L 씨가 10여명과 함께 산행을 온 것이었다. 반가웠다.
나머지 일행도 대부분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제 저녁때 가까운 곳에 와서 잠을 자고 아침 산행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10시반에 출발해서 새벽 3시부터 산행을 계속 하고 있다고 설명하니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마침내 힘들여 천왕봉에 도착했다. 천왕봉은 해발 1915미터로서 남한 육지내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이를 악물고 등산을 하고, 그런 산악회에 끼지 않으면 나 혼자서는 결코 이런 곳에 올라와 그 좋은 경치를 구경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리산은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올라가면서 나는 단풍이 들어가는 아룸다운 산의 모습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저 아름다운 산을 자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였다.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 복잡한 곳을 떠나지 못한다. 아니면 돈과 권력이 워낙 무거워 그 무게에 눌려 쉽게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돈에서 벗어나고, 명예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 산에 올라가 맑은 공기를 쐬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다시 느껴 보았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오르고 내리면서 서로 인사도 잘 한다. 개중에는 아주 무표정하게 사람을 만나는 걸 귀찮게 생각하고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그랬다.
가을산행을 옷을 수시로 입었다 벗었다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산 정상에 올라가면 바람이 강해 무척 추웠다. 그러다가 조금 내리막길을 걸으면 따뜻해서 잠바를 벗어야 했다. 그러다가 숲 속에 들어가 햇볕이 비추지 않으며 또 추웠다.
그래서 배낭도 무거웠다. 허리도 아프고 등도 아팠다. 장터목 대피소에서는 계속해서 방송을 하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되고, 무단투기를 하면 1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해지고, 국립공원 사법경찰관에 의해 단속이 된다는 취지였다. 그것도 수시로 계속해서 되풀이 하고 있었다.
모처럼 힘들여 높은 곳에 올라온 등산객들에게 좋은 음악을 틀어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런 계도를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계속 반복하는 것은 모양이 좋지 않았다. 시민들 의식수준도 많이 달라졌는데 말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산행 [4] (0) | 2005.10.16 |
---|---|
지리산 산행 [3] (0) | 2005.10.16 |
지리산 산행 [1] (0) | 2005.10.16 |
천안을 다녀와서 (0) | 2005.10.13 |
가을 달빛 (0) | 2005.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