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을 통해서 나는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해지면 얼마나 나약해지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평소 단련되지 않은 체력으로 무리한 산행을 하는 건 무모한 일이다. 나는 다른 회원들이 나보다 세시간 이상 단축해서 전코스를 주파하는 것을 보고 그걸 알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회원들도 별로 힝을 들이지 않고 산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기야 힘이 들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모두 참고 견디는 것뿐이겠지. 천왕봉 올라가는 마지막 코스는 정말 힘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천왕봉에 올라가 주변 경치를 보니 올라갈 때의 힘든 일은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것이었다.

 

사람처럼 민감한 존재는 없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을산을 보면서 낙엽과 단풍 속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시 한편에 대한 시상이 떠오르기를 바랬다. 그러나 막상 한밤중에 시작된 산행에서 그런 여유는 모두 사라졌다. 당장 힘이 들고, 위험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남아야 하고, 졸렵고 갈증이 나는 상태에서 시상은 그림의 떡이었다.

 

사람은 극한상황이 되면, 당장 발가락이 아픈 것,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은 것,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서 편하게 쉬고 싶은 것만 생각난다. 다른 문제는 이차적인 것이었다. 현실적을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문학이나 예술은 사치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지리산의 가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면, 산이 알록달록 채색이 되었다. 가까이서 보는 단풍, 많이 물이 들어있었다. 나는 풀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 보면서 멀리 떠 있는 구름 한떼를 보고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다음에 또 가고 싶다. 이번처럼 무리한 코스는 안 되고, 나에게 맞는 하루 코스로 6-7시간 정도면 좋겠다. 다음에는 사진기를 가지고 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찍어두어야겠다.

 

지금 생각해도 마지막 힘든 상황에서 도움을 주었던 우 00 산악대장님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 힘이 들때, 절망에 처했을 때 남을 도와주면 그토록 고마움은 가슴 속에 간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리했던 산행 후유증  (0) 2005.10.20
시집을 받고 나서  (0) 2005.10.18
지리산 산행 [3]  (0) 2005.10.16
지리산 산행 [2]  (0) 2005.10.16
지리산 산행 [1]  (0) 2005.10.1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