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범 상호간의 말맞추기


                                                       가을사랑


“최 사장님, 제가 작년에 받았던 돈 3천만원은 빌려 썼다가 다시 돌려드렸던 것이라고 진술해 주세요.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구속되고 파면되어 인생이 끝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김 과장님, 알았습니다. 과장님께 제가 무이자로 빌려 드렸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공무원을 다치게야 하겠습니까? 과장님에 대한 의리는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전혀 걱정 마십시오.”


구청 건축과장인 김 과장은 건물을 신축하는 최 사장에게 건축허가를 내 주는 과정에서 뇌물로 3천만원을 받았습니다. 최 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 직원 중 한 사람이 퇴직한 후 앙심을 품고 검찰에 회사 비리를 제보하여 수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최 사장이 회사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고, 그 비자금 사용내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구청 건축과장인 김 과장에게 3천만원이 건네진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와 같은 검찰 조사내용을 알게 된 김 과장은 최 사장을 은밀하게 만나  부탁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뇌물이 아니고, 단순한 대차관계로 말을 맞추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김 과장은 최 사장에게 받았던 돈 3천만원을 돌려주고 차용증과 반환영수증 등을 날짜를 소급해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최 사장이 구속되고 검찰에서 회사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여 탈세 등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진행되자, 최 사장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김 과장에 대한 돈 3만원도 뇌물로 준 것이라고 실토하기였습니다. 그런 다음 검찰에서 뇌물공여사실을 자백했다는 내용을 김 과장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최 사장은 자신이 불가피하게 자백했고 검찰에서 김 과장을 구속할 것 같으니 일단 도피해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김 과장은 검찰조사를 피해 도피했습니다. 이런 경우 최 사장과 김 과장은 법적으로 어떠한 책임을 지게 될까요?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었던 사람이 수사를 받게 되면, 공무원은 뇌물공여자와 서로 말을 맞추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돈을 주고 받은 사실 자체를 은폐하려고 합니다. 뇌물을 현금으로 준 경우는 더욱 그렇고 수표로 준 경우에도 계좌추적이 쉽지 않기 때문에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돈을 주고 받은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금품수수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돈을 주고 받은 사실은 있었으나, 그것은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단순한 대차관계였다고 주장합니다. 마지막까지 사건 청탁은 없었다고 하면서 직무관련성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뇌물공여자도 함께 형사처벌될 뿐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에서 공무원으로 하여금 처벌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버티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인 김 과장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돈을 받았으므로 수뢰죄가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수뢰금액이 3천만원이므로 김 과장의 경우에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 제1항 제3호에 의하여 5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이러한 특가법 규정은 2005년 12월 29일 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최 사장은 형법 제133조 제1항에 의해 증뢰죄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최 사장이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뢰죄를 범한 김 과장으로 하여금 도피하라고 권유한 사실이 범인도피죄에 해당하는지 문제가 됩니다. 형법 제151조 제1항은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김 과장은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수뢰죄를 범한 사람이며, 범인도피죄에서 범인이라 함은 혐의를 받고 수사가 진행중인 자도 포함되며, 도피하게 한다는 것은 관헌의 체포 발견을 곤란 또는 불가능하게 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하므로 최 사장의 행위는 범인도피죄에 해당합니다. 범인 자신의 도피행위는 구성요건해당성이 없어 처벌되지 않으므로 김 과장이 피신하는 것은 범죄가 되지 않습니다.


최 사장이 자신의 증뢰죄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공무원인 김 과장을 도피시키는 것이 증인도피죄에 해당하는지고 문제됩니다. 형법 제155조 제2항은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인을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증인도피죄에서 말하는 증인에는 수사기관에서 조사하는 참고인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다수설입니다. 그러나 증인도피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인을 도피시켜야 성립하므로, 자기의 사건에 관한 증인을 도피시키는 것은 처벌되지 않습니다. 대법원도 피고인 자신이 직접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증인이 될 사람을 도피하게 하였다면, 그 행위가 동시에 다른 공범자의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에 관한 증인을 도피하게 한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증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판 2003. 3. 14. 2002도6134). 따라서 최 사장은 증인도피죄로 처벌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김 과장이 자신의 뇌물사건에 관하여 공범인 최 사장과 말을 맞추려고 한 행위가 처벌대상이 되는지가 문제입니다. 공범 상호간에 말을 맞추어 범행을 부인하는 행위 자체는 처벌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끝으로 최 사장과 김 과장이 뇌물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날짜를 소급해서 차용증과 영수증을 작성해 놓은 행위는 증거위조행위에 해당하여 증거인멸죄가 될 수 있으나, 뇌물죄가 필요적 공범으로서 두 사람 모두 자기의 형사사건에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는 것이므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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