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와 책임


                                                       가을사랑


 

북한산 등산을 했다. 구기동 매표소에서 대남문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렸다. 힘들지만 산행은 역시 상쾌한 기분을 준다. 도심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분위기, 맑은 공기, 파란색깔의 나뭇잎들, 계곡의 물소리, 매미소리 등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공간이다.


계절은 서서히 바뀌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가 바뀐다. 산 꼭대기를 넘어 자리를 펴고 앉아 있는데 벌써 선선하다. 누워 있을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응달진 곳이라 더욱 그랬다. 한 여름을 넘어서서 그런지 매미소리도 처량하게 들렸다. 곧 가을이 올 태세다.


숲 속을 걸으며 의리와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세상을 살면서 의리가 강조되는 때가 있다.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의 관계에서 인간적인 의리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특히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서 의리는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의리가 없는 사람은 왕따를 당하고 배척된다.

 

동창회에 잘 참석을 하지 않고 동창회비도 제대로 내지 않으면 의리가 없는 사람으로 비난을 받는다. 남녀간의 관계에서도 기왕에 진행된 관계를 갑자기 바꾸면 의리가 없는 것으로 서운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의리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친척에 대한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가까운 친척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는데 혼자 잘 살고 있으면 의리가 없는 사람이 된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의 청탁을 안 들어주면 그 또한 의리가 없는 사람으로 손가락질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추상적이고 간접적인 의리 보다 자신에 대한 책임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문제다. 또한 그러한 인간적인 의리 가운데에는 법에 위반되거나 부도덕한 경우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숨겨주는 의리는 범인은닉죄로 처벌 받게 된다. 가까운 사람들의 소송에 증인으로 나가 편을 들다가는 위증죄로 고소를 당한다.

 

공직자가 주변 사람들의 청탁을 쉽게 들어주다 보면, 주변 사람들은 그 틈에 돈을 받아 먹어 변호사법위반죄가 되고 공직자는 휘말려들어가 옷을 벗거나 처벌되는 경우도 있다. 가정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가 애정에 약해 잘못 처신했다가는 간통죄로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의리를 지켜야 할 상황이 되면, 그 의리의 내용과 성질, 중요성, 비중을 잘 따져 지킬 의리는 지키고, 지키지 못할 의리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뒤죽박죽 되었다가는 패가망신하고 자신의 할 일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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