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적 인과관계, 객관적 귀속, 살인죄 및 살인미수

김주덕

문헌: 고시연구

권호: 23권1호(262호)

출처: 고시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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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문〕

_ 갑은 평소 원한관계에 있던 을을 살해하기 위하여 30미터가 넘는 절벽으로 을을 밀어 떨어뜨리기 위해 을을 뒤에서 밀고 있었다. 이때 마침 절벽 아래에서 공기총을 가지고 사냥을 하고 있던 병이 이러한 광경을 보고 자신도 평소 을을 살해하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기총으로 을을 향하여 발사하였다. 그 과정에서 을이 절벽으로 추락하게 되고 공기총은 을을 빗나가고 말았지만 을은 절벽에서 추락함으로써 사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경우 갑과 병의 형사책임을 논하라.
_ 〔핵심포인트〕 수인의 고위행위가 경합하여 어떠한 결과발생에 이른 경우의 문제는 형법케이스에서 중요한 비중을 갖는다. 형법상 인과관계의 문제에서 가설적 인과관계와 객관적 귀속의 문제 등이 중점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1] 문제의 소재

_ 갑의 행위로 인하여 을이 사망에 이른 것은 명백하다. 병은 자신도 을을 살해하기 위하여 떨어지고 있는 을을 향해 공기총을 발사하였으므로 살인죄의 실행의 착수는 성립한다. 다만 병의 살인죄의 기수성립 여부와 관련하여 병의 살해행위와 을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의 존재문제와 가설적 인과관계의 내용과 사망결과의 귀속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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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여기서 결과귀속의 전제로서 필요시되는 인과관계와 그 결과를 행위자에게 귀속시키기 위한 객관적 귀속이론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인과관계의 객관적 귀속

1. 인과관계의 의의와 범위
_ 결과귀속을 인정하기 위한 전제로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결과귀속을 위하여 필요한 인과관계의 범위에 대하여는 견해가 일치하고 있지 않다. 객관적 귀속이란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결과를 행위자에게 결과적으로 귀속시킬 수 있는가를 확정하는 것으로, 발생된 결과를 행위자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인과관계가 있는가의 존재론적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가 정당한 처벌이라는 관점에서 행위자에게 객관적으로 귀속시킬 수 있느냐라는 규범적·법적 문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의 확정 내지 존재는 인과관계론으로 그 범위는 객관적 귀속론으로 해결하여야 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기서는 인과관계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로서 조건설과 상당인과관계설 및 합법칙적 조건설에 대하여 검토하고 인과관계와 그 결과귀속의 기준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조건설
_ 행위와 결과 사이에 조건관계만 있으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견해이다. 그 행위가 없었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 때에는 인과관계가 인정되며, 모든 조건의 동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등가설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① 인과관계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고, ② 그 행위가 없었어도 다른 상황에 의하여 같은 결과를 발생하였을 것이라는 가설적 인과관계와 단독적으로도 결과를 야기함에 충분한 수개의 조건이 결합하여 결과를 발생케 하는 이중적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조건설은 인과관계의 확대를 책임의 단계에서 제한하려고 하나 책임에 의한 수정이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2) 상당인과관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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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통설과 판례가 취하고 있는 입장으로서(절충설) 조건설에 의한 인과관계의 범위를 구성요건의 단계에서 제한하려고 하는 견해이다. 결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경험칙상 상당한 조건, 즉 결과에 상당한 조건만 원인이 되고 상당한 책임의 기초가 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상당인과관계설에 대하여도 ① 상당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명백하지 아니하고, ② 존재론적인 인과관계와 규범적인 결과귀속은 구별되어야 함에도 형사책임의 범위를 인과관계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③ 형법 제15조 제2항이 "결과로 인하여 중한 죄에 있어서 그 결과의 발생을 예견할 수 없었을 때에는 중한 죄로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은 형법이 인과관계에 관하여 상당인과관계를 취하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3) 합법칙적 조건설
_ 조건설과 상당인과관계설의 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근래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학설이다.
_ 합법칙적 조건설은 조건설의 결함을 경험칙으로서의 합법칙성에 의하여 시정하여 인과관계를 인정한다. 이에 의하면 인과관계의 문제는 그 행위가 없었으면 그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행위가 경험칙에 따른 인과법칙으로 그 결과를 발생케 하였느냐가 문제되며 여기에 합법칙적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합법칙적 조건설도 상당인과관계설과 마찬가지로 ① 그 합법칙성의 개념이 불분명하고, ② 형법 제15조 제2항의 결과적 가중범에서도 합법칙적 조건설을 취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2. 가설적 인과관계
_ 가설적 인과관계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가 구성요건적 결과와 인과관계적 관련이 있는 한 그 행위가 없었어도 다른 상황에 의하여 동시에 같은 결과가 발생하였을 경우를 말한다. 이는 행위와 결과 사이에 조건관계만 있으면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조건설에 의하면 인과관계가 부정된다. 즉 갑이 을을 절벽으로 밀어 떨어뜨린 행위가 없었으면 을은 사망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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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그러나 인과관계는 현실적 조건과 구체적인 결과 사이의 관계라고 할 수 있으므로 가설적 인과관계에 있어서도 그 인과관계를 인정하여야 한다. 예컨대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을 기다리는 사람 또는 불치의 병으로 임종에 임박한 사람을 살해한 경우에도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3. 사례의 경우
_ 갑의 행위와 을의 사망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갑은 살해의 고의도 있다. 따라서 갑이 살인죄가 성립함은 이론이 없다. 문제는 병의 행위와 관련하여 인과관계의 존재 여부와 함께 을의 사망결과를 병에게 귀속시킬 수 있는가에 있다. 갑의 살해행위가 없었어도 병의 살해행위로 인하여 을이 사망에 이를 수 있었으므로 가설적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결과의 객관적 귀속은 회피가능성과 위험증대이론에 그 기준을 두고 있는데 병은 을의 사망을 회피할 수 없었고, 갑의 행위로 이미 을의 사망발생의 가능성은 명백하므로 인과관계는 존재하나 을의 사망결과를 병에게 객관적으로 귀속시킬 수는 없다고 보여진다.


[3] 갑의 죄책

_ 갑은 살인의 고의로 을을 절벽에 떨어뜨리는 살해행위를 실행하였고, 그로 인하여 을이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갑의 행위와 인과관계가 존재하고, 그 사망결과를 객관적으로 귀속시킬 수 있으므로 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성립함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형법 제250조 1항).

[4] 병의 죄책

_ 병은 갑과 같이 살인의 고의로 그 실행행위인 공기총발사행위를 하였으나, 을을 명중시키지 못하였으므로 살인미수죄가 성립한다(형법 제250조, 제254조), 병이 비록 을의 사망발생에 대한 위험을 야기시키는 실행행위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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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사실인지라 인과관계는 존재하나 인과관계의 범위문제인 을의 살해결과를 객관적으로 귀속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을이 갑의 공기총알을 맞았다면 갑의 살인죄 성립과는 별개의 살인죄가 성립한다.

[5] 결 론

_ 갑은 살인의 고의로 을을 절벽에서 추락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였으므로 살인죄가 성립하고, 병은 살인의 고의로 실행행위를 하였고 그 행위로 사망결과를 야기시키지 못하였으므로 살인미수죄가 성립한다.

〔참고판례〕

_ (1) 피고인이 주먹으로 피해자의 복부를 1회 강타하여 장파열로 인한 복막염으로 사망케 하였다면, 비록 의사의 수술지연 등 과실이 피해자의 사망의 공동원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가 사망의 결과에 대한 유력한 원인이 된 이상 그 폭력행위와 치사의 결과간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할 것이어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사망의 결과에 대해 폭행치사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대판 1984.6.26, 84도831).
_ (2) 피해자의 머리를 한번 받고 경찰봉으로 때린 구타행위와 피해자가 외상성 뇌경막하출혈로 사망할 때까지 사이 약 20여분간이 경과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이 피해자가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 있었고 그밖에 달리 사망의 중간원인을 발견할 자료가 없다면 위 시간적 간격이 있었던 사실만으로 피고인의 구타와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대판 1984.12.11, 84도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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