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1)

 

사랑에는 언제나 대상이 존재한다. 그 대상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가깝게 다가가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나 사랑할 때, 상대방의 정확한 내면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많은 것을 감추거나 분식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 이미 상대방에 대해 좋은 선입관을 가지고 그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인식과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2)

 

이것이 바로 사랑의 모순이며, 사랑이 일반 거래와 다른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나중에 많은 불행이 초래된다. 롤랑 바르트도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나는 이런 모순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에게 그 사실을 의기양양하게 시위한다(“난 당신을 잘 알아요 . 나만큼 당신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거요!”). 그러면서도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도, 찾아낼 수도, 다룰 수도 없다. 나는 명백한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을 열어젖혀 그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수수께끼를 풀어헤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어디서 온 사람일까? 그는 누구일까? 나는 기진맥진해진다. 나는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195쪽에서-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3)

 

사랑할 때 우리는 착각을 한다. 상대방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구체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의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그것이 사랑의 모순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에 그냥 만족하면 된다. 그것을 다시 왜곡하지 마라. 상대방의 진실한 모습을, 완벽한 존재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하지 마라. 자신의 눈에 비친 그의 현재의 모습이 그의 존재의 그림자라고 생각하라.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4)

 

영희가 끝까지 헤어지지 않겠다고 버티면 철수가 영희를 버리기는 쉽지 않다. 부인과 이혼하지 않고, 관계가 계속될 소지도 많다. 처음에만 시끄럽다가 부인도 지치고, 현실적으로 타협해서 관계가 묵인되는 경우도 많다.

 

철수는 결국 아내와 애인 양쪽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 많은 여자들이 유부남을 놓지 않고 붙잡고 매달려 이렇게 되는 수도 많다. 특히 돈이 많은 재벌의 경우에는 돈 때문에도 여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5)

 

그런데 영희처럼 깨끗하게 포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건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다. 상대방과 싸우기 싫고 치사한 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희처럼 돌아설 때 돌아설 줄 안다.

 

사실 영희와 같은 입장에서 상대방 여자가 이혼해 줄 것도 아닌데 어정쩡한 상태에서 남자를 붙잡고 있어 보아야 앞이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앞날이 매우 험난해 보이고, 치사한 생각이 들 것이다.

 

사랑은 모순 때문에 존재한다 (6)

 

어떤 의미에서는 깨끗하게 일찍 끝내는 것이 옳은 판단일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희는 철수에게 이용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질지 모른다.

 

그러나 철수는 결코 자신이 영희를 5년 동안 이용했다는 생각은 털끝만치도 안할 것이다. 서로가 사랑했고, 서로가 좋았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자신도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사랑하는데 썼다고 주장하면서 과연 영희가 잃은 것이 무엇인가 하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게 남자와 여자의 인식 차이이고, 사회에서 보는 객관적인 인식과 주관적인 평가의 차이일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