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의 신화

시지프스는 사람 중에서 가장 현명하고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와 그리스인의 시조인 헬렌 사이에서 태어난 시지프스는 헤르메스가 아폴론의 소를 훔친 사실을 일러바쳤다.

그 후 시지프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둔갑해 아이기나를 납치해 가는 현장을 목격하고,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아소포스에게 딸인 아이기나가 납치된 섬을 알려주어 구출하도록 도와주었다.

제우스 신의 노여움을 받게 된 시지프스는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시지프스는 큰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했는데, 온 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바로 그 순간에 바위는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떨어져 내려왔다.

시지프스는 다시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바위가 늘 그 꼭대기에 있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시지프스는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수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 오늘도 계속해서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다.

1976년 8월 해인사의 계곡은 시원했다. 그곳에서 나는 책에 몰두하고 있었다. 원당암에서 보내는 시간은 마치 정지해 있는 듯 싶었다. 밤이 되면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져 내려왔다. 가야산의 정기를 마시면서 삶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신은 때로 멈춰버린 것 같았다.

혼자서 작은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시지프스를 떠올렸다. 매일 되풀이되는 권태로운 삶은 나에게 시지프스의 신화였다. 그 생활이 형벌이었는지, 아니면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발돋음이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먼 훗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가을에 서울로 돌아와 코스모스가 활짝 핀 교정을 거닐면서 나는 또 다른 시지프스를 생각했다. 시지프스는 현명하고 신중했던 인간이었다. 비록 그 때문에 신들의 미움을 사는 행동을 하게 되었지만, 시지프스는 인간으로서 신에 도전했다. 그 도전의 결과는 가혹한 형벌의 수레바퀴에 깔려 지내야 했지만, 그래도 그는 도전의 의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게 그의 존재의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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