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결혼 전 옛 애인을 다시 만나 흔들리는 여자

 

며칠 후 정혜는 그 남자를 만났다. 그러니까 벌써 헤어진 지 2년 10개월이 지난 때였다.

“자기가 무척 행복해보여서 좋았어. 남편이 잘 생겼고, 자기에게 잘 해주는 것 같아. 자기와 헤어지고 많이 방황했었어. 그러다가 지금 그 여자를 만났어. 이제 모두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잊어버리고 열심히 살고 있어. 아무튼 우연이지만 지난 번 만나서 반가웠고, 앞으로 잘 살기를 바래.”

“오빠를 다시 만나니까 내 마음이 흔들려서 힘들어. 모든 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 용서해줘요. 그리고 그 여자에게 잘 해줘요.”

 

정혜는 눈물을 흘렸다. 지난 시간들이 갑자기 아픈 추억이 되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정혜는 술에 취하고 싶었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남자의 품에 안겼다. 남자는 피임도 하지 않고 관계를 했다. 울면서 사랑한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다.

 

정혜는 자신의 마음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최국성이 첫 남자는 아니었다. 정혜는 대학고 1학년 말에 첫경험을 했다. 그 후 몇 사람과 연애를 했다. 그런데 만났던 남자들이 나이도 어렸고 사랑에 대해 진지하지 못했다. 그냥 가볍게 데이트를 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가끔 성관계를 가졌지만, 정혜에 대해 목숨을 거는 남자는 없었다. 그 때문에 정혜 역시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최국성은 그렇지 않았다. 매우 순수했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 음악을 하는 남자였다. 그래서 사랑도 음악적으로 리드미칼하게 했다. 음악에는 장조와 단조가 있다. 음악에서는 어떤 한 음이 으뜸음으로서 우위를 차지하고, 다른 음은 으뜸음과의 종속적인 질서 관계에 놓이게 된다.

 

딸림음과 버금딸림음이 으뜸음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기능을 다하여 조(調)가 확립된다. 조성음악에 있어 근간적인 음을 정리 ·배열하면 장음계와 단음계가 얻어진다. 장음계에 바탕을 둔 장조의 악곡은 밝은 느낌을 주고, 단음계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단조의 음악은 어둡고 슬픈 느낌을 준다.

 

국성은 정혜와의 관계에서도 장조와 단조의 음계를 적절히 적용했다. 어느 날은 무척이나 밝고 음성도 높았다. 어느 날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분위기를 만나는 시간부터 헤어지는 시간까지 유지했다. 잠자리에서도 국성의 율동과 변화는 장조와 단조를 반복했다.

 

정혜는 이런 국성의 분위기와 감성에 이끌려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다. 국성에게 이지적이거나 이성적인 면은 거의 없었다. 그는 매우 감성적이었고, 형이하학적이었다. 때로는 동물적이었고, 반이성이 피에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국성은 동성애자는 아니었지만, 늘 마음 한편으로는 동성애를 상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정혜도 국성과 몸을 섞을 때에는 가끔 동성애를 꿈꾸기도 했다.

 

1년 정도 정혜가 국성에 빠져있을 때, 정혜집에서는 몇 군데 중매로 선을 보게 했다. 정혜집안이 돈이 많았기 때문에 남자들은 많았다. 의사도 있었고, 변호사도 있었다. 부잣집 아들이나 운동선수도 있었다. 정혜는 국성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들이 선을 보라고 해도 강하게 반대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부모는 일단 선이나 보고 천천히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정혜는 하는 수 없이 몇 사람을 만나보았다. 하지만 정혜의 몸과 마음은 이미 국성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남자를 만나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 남자의 단점과 약점만 눈에 들어왔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눈빛이 매서워보였고, 꼭 뱀눈 같이 보였다. 지식이나 이성으로 정혜를 제압해서 정혜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많이 배운 사람은 꼭 인공지능에 장난감옷을 입혀놓은 괴물처럼 보였다. 그런 남자들은 섹스로 전자계산기를 켜놓고 그에 따라 효율적으로 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하려고 할 것 같아서 징그러웠다.

 

돈이 많다는 집안의 남자들은 돈이나 흥청망청 쓰다가 부모 기업체는 10년이 못가서 부도나고 바람이나 펴서 혼외자를 최소한 다섯명은 둘 것 같아서 싫었다. 판사나 검사는 정혜가 나중에 남편이 싫증이 나서 바람이라도 피면 즉시 법적으로 강력한 조치를 할 사람 같아서 무서웠다.

 

의사는 매일 피를 보고 병원균이 득실득실한 곳에서 환자들과 생활해야 하니 위생적으로 불결해보였다. 스포츠맨은 무쇠처럼 강한 근육은 섹스에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잘못하면 정혜를 한순간에 날려버릴 것 같았다. 부부싸움 하다가 말대꾸라도 하면 당장 주먹이 머리통을 내리칠 것 같았다. 스포츠맨과 결혼하려면 아무래도 태권도나 복싱 같은 운동을 본격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서 곤란했다.

 

장차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남자는 정치판에 들어가면 곧 위선자나 거짓말쟁이, 이기주의자가 될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갖춘 인격자이며 능력자인 남자들은 있기는 있지만, 대개 나이가 70살은 넘었다.

 

그때까지 독신으로 계신 분들은 대개 신부님이나 스님, 아니면 독신주의로 평생을 지내다가 말년에 회심해서 결혼하려고 하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정혜의 대상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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