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대금사기(3)
가을사랑
그러면 어떤 경우에 물건값을 갚지 않은 사람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대법원에서 판결이 선고되었던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재판을 받은 피고인 갑이라는 사람은 스포츠용품 도매업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갑은 은행대출금채무와 거래업체에 대한 미지급채무 등이 합계 3억 6,600만 원에 이르렀다. 이런 상태에서는 피해자들로부터 스노우보드 장비 등 스포츠용품을 할인받아 납품받더라도 그 대금을 기일 내에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로부터 스포츠용품을 납품받고 그 대금을 제때에 지급하지 않는 등으로 그 대금 상당액을 편취하기로 마음먹고, 피해자 을에게 스노우보드 장비 일체를 할인하여 납품해 주면 이를 판매하여 매월 말일에 결제하여 주겠다고 거짓말하여 이에 속은 을로부터 즉석에서 스노우보드 장비 일체 3백만원 상당을 납품받고서도 그 대금을 변제하지 않고 동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것을 비롯하여 모두 8회에 걸쳐 1억 5천만원 상당을 납품받고서도 그 대금조로 6천만원 상당만 입금하거나 반품하고, 나머지 합계 9천만원 상당을 변제하지 않아 동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 같은 방법으로 피해자 병에게 7천만원 상당을 변제하지 않아 동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고,같은 방법으로 피해자 정에게 1억 3천만원 상당을 변제하지 않아 동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였다.
원심판결은 피고인은 스노우보드 장비 등을 납품하는 업체들에 대한 채무 및 대출금이 수억 원에 이르러 피해자들로부터 스노우보드 장비 등 스포츠용품을 할인받아 납품하더라도 그 대금을 기일 내에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로부터 위 물품 등을 납품받고 약속한 기일 내에 물품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각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사기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편취의 범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이상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등과 같은 객관적인 사정 등을 종합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고(대법원 1998. 1. 20. 선고 97도2630 판결, 2004. 12. 10. 선고 2004도3515 판결 등 참조), 물품거래 관계에 있어서 편취에 의한 사기죄의 성립 여부는 거래 당시를 기준으로 피고인에게 납품대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피해자에게 납품대금을 변제할 것처럼 거짓말을 하여 피해자로부터 물품 등을 편취할 고의가 있었는지의 여부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므로, 납품 후 경제사정 등의 변화로 납품대금을 변제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여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도5265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그 물품대금을 변제할 의사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사정들이 있다. 피고인에게 편취의 범의를 인정할 객관적인 사정들에 관하여 좀더 세밀히 심리하여 본 다음 피고인에게 과연 위 물품 공급 당시에 편취의 범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기죄는 타인을 기망하여 착오에 빠뜨리고 그 처분행위를 유발하여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얻음으로써 성립하는 것으로서,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하여는 기망행위와 피기망자의 착오 및 재산적 처분행위가 있어야 하고 이들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할 것이며(대법원 2000. 6. 27. 선고 2000도1155 판결 등 참조), 한편 일반적으로 물품거래 관계에 있어서 물품대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피해자를 기망하여 물품을 공급받는 경우 피해자의 착오에 의한 재산적 처분행위는 물품의 교부로서 이로써 재물에 대한 사기죄가 성립하고, 그 이후에 물품대금채무를 변제하지 아니한 것은 채무불이행에 불과하여 별도로 재산상 이익을 편취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다만 또다른 기망 행위에 의하여 그 채무변제의 유예를 받거나 채무를 면제받은 경우 등 피해자의 별개의 처분행위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재산상 이익 편취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편취의 대상이 재물인 스포츠용품인지 아니면 물품대금 미변제로 인한 동액 상당의 재산상 이득인지 그 자체로 명확하다고 할 수 없으나, 이를 물품대금 미변제로 인한 재산상 이득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당초부터 대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피해자들을 기망하여 물품을 교부받은 것이라면 물품을 교부받은 때에 그 물품 편취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하고 그 후에 대금을 변제하지 아니한 행위는 별도로 재산상 이득 편취에 의한 사기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으며, 그렇지 아니하고 물품을 교부받은 후에 비로소 편취의 범의가 생긴 것이라면, 그 대금 미변제와 관련하여 별도로 피고인의 기망행위와 피해자들의 착오로 인한 처분행위가 있다고 인정되지 아니하는 한 이 역시 채무불이행에 불과하여 재산상 이득 편취에 의한 사기죄가 성립한다고는 할 수 없는바, 그렇다면 원심으로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재물인 스포츠용품을 교부받아 이를 편취하였다는 것인지, 아니면 변제하지 아니한 물품대금 상당의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여 이를 편취하였다는 것인지를 명확히 하고, 나아가 피고인의 기망행위와 피해자들의 착오 및 재산상 처분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살폈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이 점에서도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사기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다(대법원 2005.11.24. 선고 2005도7481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