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you from? (3)

 


                                                             가을사랑

 

 


3. 캠퍼스의 언덕에서


혼자 있다가 피곤해서 낮잠이 들어 깨어 났을 때 해가 뉘엿뉘엿하면서 저물어가고 있을 때가 제일 싫은 것 같아요. 반쯤 어두운 고요의 무게가 소파에 누워있는 나를 누르고 한동안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면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차라리 캄캄하면 아무 일이 없었을텐데 말이예요. 


해가 지기 전에 느껴지는 불안감, 그것은 동물적인 본능인가 봐요. 그 전에 내 친구 이야기인데요. 미국에 와서 3개월 된 어린 딸을 car seat에 앉히고 운전하고 가다가 해가 떨어질 때가 되면 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대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울고, 아무리 손을 잡아줘도, 우유병을 입에 대주어도 계속 운대요. 그래서 차를 세우고 아이를 안고 있으면 울음을 그치고 다시 차를 타고 가도 울지않는다는 거예요.


동물이나 어린 아이처럼 사람도 저녁 때가 되면 불안해지고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 황혼을 느끼게 될 때에는 마찬가지로 불안해 하고 보호받고 싶은 상태가 되겠지요.


처음 만났을 때 하셨던 말씀, ‘어디에서 오셨어요?’그것은 매우 중요한 우리들 삶의 영원한 화두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정말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곳이 어디인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어요. 모르기는 몰라도 아마 우리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세 번째 만남은 대학 캠퍼스였어요. 그 사람은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나는 그 당시 그 사람이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해야 만날 수 있었어요. 그 사람에게는 편지 이외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 사람은 만나기 몇 시간 전에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의 공부가 깊이를 더해 가고,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그냥 그렇게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방해하지 않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고 느끼면서, 그렇게 기다림의 세월이 흐르고, 몇 주만에 몇 달만에라도 연락이 오면 뛸듯이 기뻐서 그 사람을 만나러 달려 갔던 거예요.


그 때 그 사람이 자세하게 알려준 대로 어떤 번호의 버스를 타고 어느 정류장에 내리니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녁식사를 하고 캠퍼스로 들어갔어요. 다소 가파른 길이었어요. 초가을 날씨였지만 춥지도 않았고, 너무 너무 행복했어요. 한강이 보이는 잔디밭에 앉아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어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강물이 보였어요. 소나무숲에 둘러 쌓인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게 떠 있었고, 강물은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 마치 한폭의 그림같았어요. 


잔디가 축축해져 엉덩이가 차가워지는 줄도 모르고 별빛 아래 앉아 마냥 이야기하고있었지요. 그날 밤,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마 나나무스끄리의 노래를 들었던 것 같아요. 바람도 잔잔한 밤날씨는 마치 늦여름철의 포도처럼 상큼한 분위기를 선물로 주었어요.


그때 이야기한 말 중에 나는 장자의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메뚜기가 비행기를 보고 아마 큰새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할 거라고요. 메뚜기는 비행기를 모르니까요. 사람은 자기의 척도만 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그 사람에게 해주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항상 다음 약속을 정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또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서 그 사람과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지고 버스를 탄 나는 구름에 뜬 기분을 느꼈어요. 


사람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때는 그 사람이 한 가지 일에, 그가 믿음을 갖고 있는 일에 모든 열정을 다해 집중해서 열심히 일을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에게서는 보배로운 향기가 나요. 그 사람을 만나면서 느꼈던 것은 바로 그러한 향기였던 것이었어요.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많은 시간을 걸었어요. 내가 그 사람 옆에서 튼튼한 두 다리로 함께 걸을 때 나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부러울 것이 없었어요. 그 사람이 고시에 붙거나 안 붙거나는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에 아무런 차이도 주지 않았어요.


나는 그 시절 나름대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 당시 나보다 영문 속기를 잘 하는 사람은 서울에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어느 화가 아뜨리아에서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그린 작품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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