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3)
가을사랑
강의를 하러 학교에 갔더니 철쭉꽃이 피어있는 곳이 있었다. 그 선명한 보랏빛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잎은 너무 가냘프게 보여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갓 태어난 아이처럼 철쭉은 사람의 손을 허용하지 않았다. 코트를 벗어버린 봄날에 불어오는 미풍은 우리들 가슴 속에 사랑의 씨앗을 날리고 있었다. 강의를 마친 후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수강생 여러분들께!
어제 세 번째 강의를 했습니다. 좁은 강의실에 앉아 열심히 강의를 듣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니 옛날에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생각이 나서 깊은 감회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강의를 듣고, 인생을 논하고, 한잔 술에 시를 읽는 것, 이런 일들이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멋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낭만적인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낭만 가운에 여러분들이 현재 하고 있는 공부는 가장 중요한 중추입니다. 대학교에 재학중일 때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 앞으로 사회에 나가 그 지식을 활용해서 무언가 보람 있는 일을 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많은 사람이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는 졸업 후 공기업체나 대기업체에 취업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이든 자신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빠른 속도로 책을 읽어나가면 됩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소음에도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처음에는 옆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신경이 써지지만 더 열심히 책에 전념하면 그런 소음을 초월하게 됩니다. 점점 공부에 도가 통하는 셈이지요.
복잡한 가정환경, 어려운 사회생활, 아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걱정, 근심을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여러분들은 학생의 신분이고 공부를 해야 할 입장입니다. 공연히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해결책도 마련할 수 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걱정하고 있어야 그것은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걱정해 주는 그 사람들에게 더 근심걱정을 던져주는 일입니다. 힘들어도, 지금 처해있는 환경이 어려워도 그럴수록 더 공부에 매진하십시오. 그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비슷한 상황에서 대학시절을 보냈습니다. 물론 생각처럼 공부에 집중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많은 시간 방황하기도 하고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좀더 일찍 깨닫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좀 더 자신을 절제하면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형법총론을 강의하면서 여러분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잡담을 하면 시간이 아깝고 너무 학문적으로만 강의를 하면 딱딱한 법이론이기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을 것이고 아무튼 걱정입니다.
판례와 사법시험기출문제 등의 보조자료를 나누어줄까 하다가 우선은 기본서 위주로 중요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 3년 동안의 대법원 중요 판례요지와 해설을 담은 책자는 중간고사가 끝난 후 여러분들에게 배포해 드리겠습니다.
중간고사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객관식으로만 40문제를 출제하겠습니다. 시험범위는 중간고사 실시 전까지 강의한 부분으로 국한됩니다. 가급적 기본서를 열심히 읽는 것으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기초체력을 충분히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형법총론의 중요한 이론을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교적인 문제풀이를 하는 것은 기본이 된 다음의 일입니다. 우선은 책을 여러 번 읽어 기본적인 이론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요령 있게 정리한 다음 결론을 자신의 것으로 암기해 놓을 때입니다.
형법총론 기본서에 나와 있는 많은 이론적 대립에서 다수설과 판례의 입장이 무엇이고 그 결론이 무엇인지를 외워두십시오. 학설의 대립에 있어서 개별적인 학설의 내용보다 다수설과 판례가 취하고 있는 이론의 결론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실 그런 결론들은 총론에서 50여개도 안 됩니다. 이것을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머리속에 넣고 있으면 형법총론은 아주 쉬운 과목이 될 것입니다.
아직 여러분들은 혼란 속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사법시험이 아주 어렵고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도전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을 가지고 공부하십시요. 책을 자꾸 읽으십시오. 현재 듣고 있는 강의의 진도에 맞추어 모든 과목의 예습과 복습을 하십시요.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자꾸 읽으면 저절로 이해가 되고 공부가 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선배들도 다 똑 같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100% 실력을 갖추어야 시험에 붙는 것도 아닙니다. 다 불안한 가운데 부족함을 느끼면서 시험에 붙는 것입니다.
수석합격을 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되 공부하는 요령을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제한된 시간을 가지고 넓은 범위의 양을 이해하려면 요령껏 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부진정부작위범의 구성요건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보통 60쪽 정도의 분량을 사전에 예습해 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강의와 관련해서 궁금한 사항, 또는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제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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