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들의 서식처(2)


                                                                   가을사랑



절도죄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생각해 보라.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더군다나 가정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쳐가지고 나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문단속이 소홀한 집은 대개 가난한 가정이다. 달동네에서는 문단속이 그렇게 철저하지 않다. 아직도 시골에 가면 대문을 잠그지 않고 마실을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부자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는 담도 높고 철옹성이다. 군데 군데 경비초소도 있고, 대부분 무인보안경보시스템을 갖춰놓고 있다. 이런 곳을 뚫고 들어가 귀중품을 들고 나온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절도범은 범행 초기단계에서는 문이 잠겨져 있지 않은 집을 대상으로 쉽게 도둑질을 하지만, 점차 시간이 가면서 부단히 연구를 해서 철저한 경비를 하고 있는 집을 대상으로 대담한 도둑질을 한다. 그러다 보면 이른바 대도(大盜)로 발전한다. 대도란 큰도둑이라는 뜻으로 좀도둑이 아니고 수법이 교묘하고 주로 부자집만 털며 사람을 해치지 않는 수준의 도둑을 의미한다.


강도는 더 큰 위험부담을 안고 시작한다. 강도는 대개 사람을 해치기 때문에 걸리게 되면 강도상해, 강도치상 등으로 무겁게 처벌된다. 그리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필사적으로 달라들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절도는 들키지 않고 꾸준하게 계속해서 범행을 할 수 있어 생계형범죄도 많다. 그러나 강도는 대개 검거되기 때문에 상습적인 범인으로 남아있기 어렵다. 절도죄는 상습범이 많지만, 강도죄에는 상습범이 많지 않다.


그러나 사기는 이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우선 상대방을 속이기만 하면 성공하기 때문에 절도나 강도에 비해 크게 어렵지 않다. 기본적인 무기는 거짓말이다. 상대방을 믿게 하고, 그 믿음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기꾼은 꼭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사기를 칠 수 있다. 사기를 당하는 사람은 머리가 나빠서 당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을 의심하지 않고 믿다가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사기꾼은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을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사기를 칠 수 있다. 상대방을 거짓말로 속이고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사기죄는 현대사회에서 절도나 강도보다 훨씬 많이 발생하고 점차로 지능화되고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기범의 특성은 그 사람의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성격이 사기범을 범죄로 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정직하지 못하고 교활한 성격이 남을 속여서 재산을 편취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기죄는 보다 효율적인 범행을 위하여 공범들이 조직화되고, 기업화되며 국제화되고 있다. 특히 디지털시대에서는 인터넷 등의 과학적 무기를 이용해서 과학적인 첨단수법으로 사기를 치고 있다.


그러면 사기죄는 왜 자꾸 증가하고 있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그릇된 풍토 때문이다. 물질만능의 사고에서 모든 것은 자본과 물질에 의해 판단된다. 도덕과 윤리의식은 오래 전에 실종되었다. 모두들 추상적인 정의를 외치고 도덕적인 삶을 강조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매우 냉소적인 태도로 법과 도덕을 비아냥거리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출세하는 사람들이 큰소리치고 대우받는 사회가 되었다. 법을 지키고 도덕을 따라 살고 있는 사람들만 손해를 보고 고생을 하는 분위기다. 위 아래도 없고, 도덕적 가치가 존경받는 사회가 아니다. 모든 것은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힘의 강약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에게 거짓말을 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 일은 크게 비난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남을 속여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이 없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이나 주식거래, 벤처투자 등을 통해 상대방을 속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거짓말이 사회통념상 허용하는 정도의 허위 과장 광고 정도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다.


둘째, 일반인들이 부질없는 욕심을 부리고 있어 사기피해를 당하기 쉽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돈을 벌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별다른 노력 없이 재테크를 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쉽게 사기를 당하게 된다.


잠재적 피해자들이 널려 있는 상황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사기범들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호수에 고기들이 가득 차 있으면 낚시를 하지 않던 사람들도 낚싯대를 들고 나타나게 마련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눈먼 돈을 낚으면 된다는 의식이 확산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피해자들은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 어느 정도 축적이 되면 사기범을 만나 일시에 털어넣는다. 피해자들은 꿀을 모으는 벌들과 같다. 쉬지 않고 꿀을 모아 놓으면 사기범들이 와서 한잎에 털어넣는다. 그리고 도망가 버리면, 벌들은 다시 꿀을 모아야 한다.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도둑이나 강도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긴장을 하고, 최선을 다한다.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범죄를 막을 수 있는 유형적인 방법은 쉽게 강구될 수 있다. 그러나 사기를 막기 위한 방법은 담을 높이 쌓고 문을 잠그는 유형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 보이지 않는 신뢰를 이용하고 거짓말로 사기를 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기범죄를 막을 방법을 제대로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 사기를 당해도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유형의 사기에는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사기를 당하니 그것을 막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셋째, 법과 제도의 미비가 문제다. 사기죄에 대한 법정형 자체는 낮지 않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사기죄에 대한 유죄입증이 어려워 많은 사건이 무혐의결정이 나거나 무죄판결이 나고 있다. 평소에 상대방을 믿고 거래를 했다가 증빙자료도 없는 상태에서 거래를 했던 사람들은 사기범의 교활한 변명을 극복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사기범에 대한 양형상의 문제도 있다. 유죄가 인정되어도 형량이 낮아 사기범은 얼마 안 있어 다시 교도소에서 나와 활개를 치고 다닌다.

 

게다가 대형경제사범의 경우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사기범의 재산환수는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다. 많은 사기범들이 재산을 빼돌려 놓고 잘 살고 있다.

 

넷째, 사기방지를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거의 없는 상태다. 일반사람들에게 사기예방교육을 시키는 곳도 없다. 모든 사회생활상에서 거래를 알아서 하라는 상황이다. 국민들이 그토록 많은 사기를 당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피해자들이 고소를 하면 그때 가서 수사나 하는 정도다. 사기를 막기 위해 제도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니 일반인들은 계속해서 사기를 당하고, 사기범들은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사기를 치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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