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술인가 사기인가?
가을사랑
어떤 사람이 조상천도제를 지내고 나중에 역술인을 살대로 고소를 했다. 고소인에게 조상천도제를 올리면 집안에 좋은 일이 있으며, 하는 일들이 잘 되고, 병이 낫고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고 해서 조상천도제 비용으로 돈을 주었는데 그것이 거짓말이므로 사기죄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고소를 한 것이다. 검사는 고소인의 말이 맞다고 역술인을 재판에 회부했다.
# 불안한 중생들이여! 궂을 지낼지어다
법원에서는 역술인(易術人)이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했다. ‘비록 미신이기는 하지만 역술인이 조상천도제(祖上遷度祭)를 올리더라도 고소인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길 수 없다는 점을 알고서도 돈을 편취할 의사로 조상천도제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에서 역술인은 무죄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역술인에게 사기죄의 고의, 즉 편취의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이다. 판결 내용을 잘 읽어보면 역술인이 조상천도제를 올리면 고소인에게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믿고 돈을 받고 천도제를 지내주었으면 사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사건에서 고소인은 역술인이 ‘아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면 교통사고가 나 크게 다치거나 죽게 된다. 조상천도를 하면 교통사고를 막을 수 있고, 고소인도 아픈 곳이 낫고 사업도 잘 되고 모든 것이 잘 풀려 나간다. 조상천도비용을 내라’고 말을 해서 만일 조상천도를 하지 않으면 고소인과 그 가족의 생명과 신체에 어떤 위해가 발생할 것처럼 겁을 주어 이에 외포된 고소인으로부터 돈을 받아 이를 갈취했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고소인의 말이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역술인을 공갈죄로 재판에 회부하였다.
법원에서는 공갈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무죄이유는 위와 같은 해악의 고지는 길흉화복이나 천재지변의 예고로서 역술인에 의하여 직접 간접적으로 좌우될 수 없는 것이고 가해자가 현실적으로 특정되어 있지도 않으며 해악의 발생가능성이 합리적으로 예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협박으로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 분석해 보면, 역술인이 고소인에게 고지한 해악은 역술인이 직접 가하는 것이거나 간접적으로 역술인이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고소인에게 누가 구체적으로 해악을 가할 것인지 그 가해자가 현실적으로 특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고소인에 대한 해악의 발생가능성이 합리적으로 예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등에 비추어 역술인이 고소인에게 말한 내용은 형법상 협박이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이다.
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으나 대법원에서도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판결을 확정시켰다(대법원 2002. 2. 8. 선고 2000도3245 판결).
점이라면 동서를 막론하고 옛날부터 오늘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아주 먼 미래까지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궁금해 하고 모르는 일이 있기 때문에 점이 존재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고, 갑자기 불행이 닥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운명을 예측해 달라고 하고, 다가 올 불행을 막기 위하여 어떤 방법이 없는지 부탁을 해 보는 것이다.
무속인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삶에 있어서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간다. 자녀들이 대학교에 붙을 것인지, 남편의 사업이 잘 될 것인지, 직장에서 승진을 할 수 있는지, 건강이 나빠지면 과연 치료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해결해 달라고 부탁한다.
결혼할 사람들의 궁합도 묻기도 하고, 심지어는 유부남과 유부녀가 두 사람의 장래에 관해 묻기도 한다.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도 당선 여부를 묻고, 죄를 지은 사람도 처벌을 받게 될 것인지 여부를 묻는다. 신세대의 특성에 맞게 사주카페라는 새로운 업종도 많이 생겼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미신이냐, 아니면 그야말로 과학적으로 설명은 할 수 없지만, 효험이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이다. 점을 보고 궂을 하고 천도제를 지내는데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무당들은 액운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굿과 부적, 치성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사람들이 역술에 의존하고 조상천도제를 지내는 등의 방법을 택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돈을 냈을 때 법적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적당한 돈을 준 경우에는 별로 말썽이 없다.
그러나 몇 천만 원씩 들여 액운을 막기 위한 조치를 했는데 별로 효험이 없는 경우에 사기죄나 공갈죄로 고소를 한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사기나 공갈이 되지 않는 것이지만, 정도가 심한 경우에는 사기죄나 공갈죄로 처벌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결국 역술은 그 본질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문제이므로 점을 보거나 궂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검토하여 선택할 문제이다. 따라서 지나친 거짓말이나 술수에 속지 않도록 본인의 책임하에 맡겨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헌금을 낸 것인가? 사기를 당한 것인가?
종교단체에서 헌금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을 사기죄로 처벌한 사례도 있다.
대법원은 종교의 자유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인간의 내적 자유인 신앙의 자유를 의미하는 한도 내에서만 밖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양심의 자유에 있어서와 같이 제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종교적 행위로 표출되는 경우에 있어서는 대외적 행위의 자유이기 때문에 질서유지를 위하여 당연히 제한을 받아야 하며 공공복리를 위해서는 법률로써 이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런 취지에서 피고인이 신도들을 상대로 자신을 스스로 하나님, 구세주, 이긴 자, 생미륵불, 완성자 등으로 지칭하면서 자신은 성경의 완성이고 모든 경전의 완성이자 하나님의 완성으로서 자기를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할 수 있으며, 자신이 인간들의 길흉화복과 우주의 풍운조화를 좌우하므로 10년 동안 한국땅에 태풍이나 장마가 오지 못하도록 태풍의 진로를 바꿔 놓고 풍년들게 하였으며, 재물을 자신에게 맡기고 충성하며 자기들이 시행하는 건축공사에 참여하면 피속의 마귀를 빨리 박멸소탕해 주겠다고 하고, 자신이 하나님인 사실이 알려져 세계 각국에서 금은보화가 모이면 마지막 날에 1인당 1,000억 원씩을 나누어 주겠으며, 헌금하지 않는 신도는 영생할 수 없다는 취지의 설교를 사실인 것처럼 계속하여 신도들을 기망하였으므로 이에 기망당한 신도들로부터 헌금명목으로 고액의 금원을 교부받은 것은 형법상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95. 4. 28. 선고 95도250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