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피해자의 불행


가을사랑

 

남자와 여자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살다가 정말 어이없는 일을 당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큰 불행 없이 그럭저럭 살아왔다. 그런데 커다란 불행은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그게 불행의 속성이다. 사전에 예고된 불행은 별로 없다. 대개의 불행은 어느 날 눈을 떠보면 눈앞에 닥치는 것이다.

 

사실 적은 걱정이나 근심은 중요치 않다. 단지 속이 조금 상할 뿐이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충분히 속을 썩고 고통을 받아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된다. 언제 그 고통이 끝날지 알 수도 없는 삶의 어두운 터널에 빠져 캄캄한 길을 고통스럽게 걸어나와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직접 커다란 불행을 당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불행은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하고 만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른 세상의 일로 무관심하게 그냥 넘기고 만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불행은 갑자기 닥칠 수 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의 불행을 잘 귀담아 들어둘 필요가 있다.

 

철수 부부는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다. 마흔 다섯의 동갑이다. 철수는 한 업종에 20년 가까이 종사했다. 그 분야에서 10년 넘게 형님동생하면서 지낸 사람이 있었다. 같은 곳에서 동일 업종을 하다 보니 친형제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그래서 서로 어음거래를 했다. 서로 필요할 때 어음을 빌려주고 사용했다.

 

철수는 3개월 전에 융성에게 어음을 빌려주었다. 소위 융통어음을 발행해서 실물거래 없이 빌려주는 방식이었다. 이자를 받기로 한 것도 아니었다. 서로 아는 사이에서 편의를 봐주는 것이었다. 철수는 이번에도 그냥 평소에 거래하던 것처럼 생각하고 어음을 발행해서 융성에게 주었다. 융성은 이 어음을 가지고 가서 거래은행에서 할인하여 5억원을 빌려썼다. 그리고 융성은 어음결제일에 돈을 갚지 않았다.

 

철수는 자신이 발행한 어음이 부도가 나고 말았다. 어음을 가져다 융성이 사용했기 때문에 융성이 돈을 가지고 와서 주면 그것으로 어음이 지급되도록 해야 하는데 융성이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철수는 부도처리가 된 것이었다.

 

철수가 발행한 은행도어음이 부도처리가 되자, 곧 바로 철수 명의로 된 모든 신용카드가 자동으로 거래정지가 되었다. 철수 휴대전화에 신용카드가 거래정지된다는 메시지가 왔다. 모든 금융기관이 통합시스템으로 운영되는 현대사회는 이처럼 무섭게 빠른 속도로 조치가 취해진다.

 

철수 명의로 개설된 은행통장도 모두 지급정지처분이 내려졌다. 순식간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말았다. 철수는 이제 더 이상 은행거래도 할 수 없고,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어음을 빌려쓴 융성은 부도를 내고 도주해버렸다. 당장 철수는 은행으로부터 자신의 재산에 가압류가 들어올 상황이 되었다.

 

단독주택에 5년 넘게 전세로 살고 있었는데, 전세보증금이 걱정이 되었다. 급한 마음에 전세계약을 아는 사람 이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철수가 운영하던 점포보증금도 빼버렸다. 단지 어음을 빌려주었던 피해자인데 모든 문제는 자신 앞에 떨어져 버렸다.[핵심포인트 1. 전세계약의 명의를 바꾸어 놓으면 강제집행면탈죄가 성립하는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장사도 못하고, 전세 살고 있는 집 마저 불안해서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음이 부도가 나서 어음을 빌려쓴 융성에게 전화를 했더니, 무조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사업이 잘 안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어 부도를 내게 되었다고 하면서 아우에게는 할 말이 없다고 용서를 빌었다.

 

나중에 해결해 줄테니 기다리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때의 심정이 어떨까? 하루 아침에 이런 날벼락이 있을 수 있는가? 철수는 기가 막혔다. 그토록 믿었던 형님 같았던 융성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남의 어음을 빌려쓰고 피해를 주고 단지 미안하다는 말 한디만 하고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다니 이럴 수가 있는가? [핵심포인트 2. 이런 상황이 되었을 때 철수는 융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대개의 경우 이런 상황이 된다. 가해자는 자신도 부도가 나서 망했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스럽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된다. 이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어본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말로 위로가 될 성질도 아니다. 말은 어디까지나 말일 뿐이다.

 

철수는 부인에게 사정을 털어놓았다. 부인은 놀라서 울고만 있었다. 두 사람은 위기에 처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융성의 점포 주인에게 물어보니 보증금이 2천만원 있었는데 월세가 밀려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1천만원 정도 남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임차보증금에 대해 가압류처분을 하려고 하니 비용이 50만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가압류를 해봤자 또 몇 달 걸리다 보면 월세로 공제가 되고 남는 것이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다른 채권자들도 가압류를 하게 되면 채권금액별로 균등배분이 되어야 한다.[핵심포인트 3 채권자가 하는 가압류의 효력은 어떠한가?]

 

철수는 융성의 부인에게 전화를 했다. 융성의 부인은 자신도 남편에게 서운하다면서 융성을 욕이나 하고 있었다. 남편은 어디 있는지 연락이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철수 부부는 융성의 집에 찾아가 보았더니 한 달 전에 이사를 가고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계획적인 부도였다.

 

철수는 융성을 상대로 사기죄로 고소를 했다.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고소인 진술을 하러 경찰서에 갔더니 담당하는 경찰관이 하는 말이, 왜 이런 것을 가지고 고소를 했느냐? 이것은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을 것 같다. 고생만 하지 결과는 뻔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단순한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경찰관도 무심했다. 피해를 당한 사람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것 같으면 이런 식의 태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핵심포인트 4. 융성의 행위는 사기죄에 해당하지 않는가?] 

 

철수는 어쩔 줄 몰랐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다른 상인들도 몇 천만원씩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많았다. 그 사람들은 아무도 고소를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 귀찮게 생각을 하고, 법적 조치를 취해봤자 별로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렇다. 고소를 한다고 제대로 처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비용만 추가로 들어갈 뿐이다.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은 우선 피해있을 것이다. 몇 달 또는 몇 년을 피해 있을 수 있다. 가족들은 그대로 살면서 융성 혼자 어디 잠적해 있으면 쉽게 잡히지도 않고, 피해자들은 그냥 지치고 만다.

 

설사 붙잡혀도 곧 바로 구속되는 것도 아니다. 불구속수사원칙에 의해 일단 조사한 다음 풀어주면 또 사라져 버린다. 융성은 나중에 조사를 받게 되면 사기죄의 편취범의를 완강하게 부인할 것이다. 자신은 나름대로 열심히 장사를 했는데, 장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다.

 

철수와의 관계도 그동안 여러 차례 어음을 서로 주고 받고 했는데 모두 제대로 결제가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부도가 난 것은 융성도 다른 사람에게 돈을 떼어먹혀 연쇄적으로 부도를 내게 된 것이지 결코 어음을 빌려쓸 당시 변제하지 못할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변명하면 쉽게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철수는 장사도 그만 두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지 막연한 신세가 되었다. 막판에 어음을 잘못 빌려준 것 때문에 5명의 식구가 고생을 하게 되었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정말 너무 억울했다. 남편이 자신에게 상의만 했으면 자신은 절대로 어음을 빌려주지 못하게 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철수가 부인에게 처음부터 모든 사정을 이야기했어도 부인 역시 10년 넘게 친형제처럼 지내던 동종 업자가 서로 어음을 주고 받으면서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못하게 막았을까? 그것도 의문이었다. 일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

 

두 사람은 한참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고 있는 세 자녀가 불쌍했다. 가까운 친척이 호주에서 살고 있는데 그곳으로 이민을 떠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이민이 쉬운 일인가?

 

나이 들어 외국에 가서 정착을 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융성만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마지막에 물론 장사가 안 돼서 그랬겠지만, 그렇다고 10년 넘게 가깝게 지낸 사람에게 5억원이라는 커다란 피해를 주고 도망쳐버리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철수 부부는 하루 하루가 지옥이다. 아무 일 없던 가정은 불행의 늪으로 추락해 버렸다. 집안에서는 웃음이 사라져버렸다. 두 부부는 건강조차 유지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입맛도 없고, 운동을 할 기력도 없어져 버렸다. 법을 잘 몰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몰랐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모두 대답이 달랐다.

 

이게 사기를 당한 사람들의 현실이다. 고통이다. 우리는 무엇을 타산지석으로 깨달아야 하는가? 금전거래가 얼마나 위험하고 조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재산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소를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무책임한 개인을 믿고 자신의 전 재산을 주었을 때 그 위험성은 바로 이런 것이다. 자신을 비롯한 전 가족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그 불행과 고통을 보상받을 곳은 아무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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