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맞추기와 증거인멸죄


가을사랑



최근에 검찰에서 특별수사활동을 벌인 신정아-변양균사건과 정윤재-김상진사건에서 당사자들의 말맞추기가 문제되었습니다. 검찰에서는 당사자들이 사전에 말을 맞추어 놓았기 때문에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법원으로부터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되지 않자 당사자들의 증거인멸과 말맞추기 시도가 예상된다고 우려했습니다.


중요한 사건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당사자들의 말맞추기로 인하여 수사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말맞추기라 함은 당사자들이 혐의사실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서로 말을 맞추어 놓았다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게 되면 맞춘대로 진술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말맞추기는 형사사건에서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를 조작하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말맞추는 행위는 피의자에게 보장된 형사소송법상의 방어권을 행사하는 적법한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방어권의 범위를 벗어나 증거인멸죄 또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나 범인은닉죄 등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됩니다. 


일반적으로 범죄수사를 받게 되면 피의자나 사건관계인들은 혐의사실을 부인하거나 그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사가 시작되면 압수수색에 대비해 증거자료를 다른 곳에 옮겨 은닉하거나, 폐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사가 성공하려면 신속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수사보안은 생명입니다. 공범관계에 있는 피의자들끼리 서로 말을 맞추어 혐의사실을 빠져나가기도 하고, 참고인들에게 거짓말을 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폭행사건에서 피의자가 폭행하지 않고 맞기만 하는 것을 보았다고 허위의 목격진술을 부탁하기도 합니다. 뇌물을 받은 공무원이 돈을 준 뇌물공여자에게 직무와 관련있는 대가성 있는 뇌물이 아니라 돈을 꾸어주었던 차용금이었다고 거짓진술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다른 사람이 운전하였던 것이라고 말을 맞추어 피의자를 바꿔치기 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형사사건에서 피의자 또는 참고인들이 말을 맞추어 허위진술을 함으로써 혐의사실을 빠져나가려고 시도하는 경우 법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피의자의 행위를 방어권 차원에서 허용하고 있습니다. 피의자가 자신에 대한 혐의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입니다. 피의자는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진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뇌물사건에서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은 이해관계를 같이 하기 때문에 검사가 아무리 추궁을 해도 뇌물을 주고 받은 사실을 부인하게 됩니다. 검사는 물적 증거나 다른 인적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그것이 실패하게 되면 그 사건은 끝나고 맙니다. 


수사기관은 피의자에게 진술을 강요하거나 자백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피의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은 범죄혐의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를 피의자가 은닉하거나 인멸하기 전에 압수수색등을 통해 확보할 책임이 있습니다. 수사기관의 책임을 제대로 하지 않고, 피의자로 하여금 증거를 보존하였다가 제출하라는 식의 수사태도는 용납되지 않는 것입니다. 위 두 사건에 있어서도 검찰은 일단 기각되었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여 법원으로 영장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피의자 본인의 행위가 아니고, 피의자 아닌 참고인이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증거를 인멸하거나 조작하는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법은 이러한 경우에 증거인멸죄로 처벌하고 있습니다. 피의자 이외의 사람이 피의자를 위하여 피의자와 말을 맞추고, 그에 따라 증거를 인멸하거나 조작하면 증거인멸죄 등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또한 피의자가 자신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이와 같은 행위를 시킨 경우에는 증거인멸교사죄로 처벌받게 됩니다.


말맞추기행위는 경우에 따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야기한 후 그 형사처벌을 면하기 위하여 타인의 혈액을 자신의 혈액인 것처럼 교통사고 조사 경찰관에게 제출하여 감정하도록 한 경우에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판 2003. 7. 25. 2003도1609).


당사자 간의 말맞추기는 또한 범인은닉죄에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범인은닉죄는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경우에 성립하는 범죄로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형법 제151조 제1항). 판례는 범인이 자신을 위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의 자백을 하게 하여 범인도피죄를 범하게 하는 행위는 방어권의 남용으로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판 2000. 3. 24. 2000도20).


범인이 기소중지자임을 알고도 범인의 부탁으로 다른 사람의 명의로 대신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준 경우(대판 2004. 3. 26. 2003도8226), 공범이 더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허위보고를 하고 조사를 받고 있는 범인에게 다른 공범이 더 있음을 실토하지 못하도록 한 경우(대판 1995. 12. 26. 93도904), 범인으로 혐의를 받아 수사기관으로부터 수사를 받게 되자 범인 아닌 다른 자로 하여금 범인으로 가장케 하여 수사를 받도록 한 경우(대판 1967. 5. 23. 67도366) 등에는 범인은닉죄 또는 범인도피죄에 해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참고인이 수사기관에서 범인에 관하여 조사를 받으면서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을 묵비하거나 허위로 진술하였으나 그것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기만하여 착오에 빠지게 함으로써 범인의 발견 또는 체포를 곤란 내지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것이 아닌 경우(대판 1997. 9. 9. 97도1596)에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맞추기는 피의자의 방어권과 관련하여 형사처벌에 있어서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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