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가을사랑



피고인 자신을 위한 증거인멸행위가 동시에 피고인의 공범자 아닌 자의 증거를 인멸한 결과가 되는 경우에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핵심은 피고인이 자신을 위하여 증거를 인멸하는 것은 증거인멸죄로 처벌되지 않지만, 그러한 증거인멸행위가 피고인 자신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피고인과 공범의 관계에 있지 아니한 제3자의 증거를 인멸한 결과를 가져온 경우 피고인은 제3자를 위한 증거인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대법원판결이 있다.


사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들은 검찰로부터 선박이 침몰한 사건과 관련하여 선박의 안전운항과 관련된 항만청의 직무수행 내용 등에 관한 서류의 제출을 요구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검찰의 자료제출요구가 있기 전에 이미 항만청 해무과 소속 공무원들이 위 선박의 정원초과 운항사실 등을 적발하여 선장등으로부터 정원초과운항확인서 4장을 작성받아 보관중이었다.


그러나 항만청 해무과 소속 공무원들은 선장등으로부터 정원초과운항확인서를 받아만 놓은채 그에 따른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고 방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피고인들은 이러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자신들을 비롯한 항만청 관계자들이 형사처벌 및 징계를 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이런 이유로 피고인들은 순차로 공소외 갑에게 위 정원초과운항확인서 4장을 소각할 것을 지시하였다.


피고인들로부터 정원초과운항확인서 4장을 소각하라는 지시를 받은 공소외 갑은 이를 소각함으로써 위 서류의 효용을 해함과 동시에 위 선박의 정원초과운항과 관련하여 구속기소된 제1심 공동피고인에 대한 선박안전법위반사건의 증거를 인멸하였다는 범죄사실로 검사에 의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원심판결은 피고들에 대한 증거인멸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하였고,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판결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증거인멸에 대한 범죄사실 자체에 의하더라도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하여 그 증거가 될 자료를 인멸하였다는 것이므로, 비록 위 피고인들의 행위가 동시에 위 제1심 공동피고인에 대한 별개 범행의 증거를 인멸한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은 자신들 스스로가 직접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관계되는 증거를 인멸한 것이므로 증거인멸죄로 처벌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러한 증거인멸행위로 인하여 피고인들 이외에 다른 사람에 대한 별개 범행의 증거를 인멸한 결과가 되더라도 마찬가지로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증거를 인멸한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이다.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 또는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것으로서, 피고인 자신이 직접 형사처분이나 징계처분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그 증거가 될 자료를 인멸하였다면, 그 행위가 동시에 다른 공범자의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증거인멸죄로 다스릴 수는 없다 할 것이며(대법원 1976.6.22. 선고 75도1446 판결 참조), 이러한 법리는 그 행위가 피고인의 공범자가 아닌 자의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결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대법원 1995.9.29. 선고 94도260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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