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
서울에서는 신정아 - 변양균 사건을 수사하고 있고, 부산에서는 정윤재 - 김상진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묘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 정책실장과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낸 사람들이 관련된 사건이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고 있다. 청와대의 도덕성이 크게 실추되었고, 특히 대선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있어 정치권에서 공방거리로 삼고 있어 일반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사건들이다. 야당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검찰수사결과를 지켜보았다가 미흡한 경우에는 특별검사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법원에서 구속영장과 압수수색영장이 기각된 상태에서 검찰수사는 커다란 차질을 빚고 있을뿐 아니라, 불구속상태에서 수사를 받고 있는 사건 당사자들의 증거인멸 및 말맞추기 등의 의혹이 있다고 하면서 검찰은 향후 수사결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사건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당사자들의 말맞추기로 인하여 수사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말맞추기는 원래부터 대부분의 사건에서 이해관계인들이 자신들에 대한 혐의사실을 빠져나가기 위한 방어권행사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공범들 상호간에 있어서는 그러한 현상이 특히 심하다.
뇌물사건에서 뇌물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해관계를 같이 하기 때문에 검사가 아무리 추궁을 해도 물증이 없으면 뇌물을 준 사실을 부인하고, 뇌물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그러면 검사는 물적 증거나 다른 인적 증거를 찾으려고 노력을 하게 되고 그것이 실패하게 되면 그 사건은 기소하지 못하고 끝나고 만다.
그래서 검사는 뇌물공여자를 압박하여 뇌물을 준 사실에 대한 자백을 받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뇌물공여자는 자신에 대한 수사확대나 처벌 등을 두려워하여 검찰수사에 협조하고 공무원을 처벌할 수 있도록 뇌물공여사실을 자백하게 된다. 그러나 끝내 뇌물공여자와 뇌물수수자가 말을 맞춰 입을 다물어 버리면 뇌물수사는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두 사건에서도 검찰은 당사자들 사이에 말맞추기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고 그에 대비하여 대비책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9월 21일에는 신정아 씨를 조사 후 귀가시키면서 검찰수사관을 함께 보내 승용차 편으로 뒤를 쫓게 했지만 도중에 놓쳤다고 한다.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된 피의자는 구속될 때까지 불구속으로 조사를 받는 것인데, 이러한 불구속피의자의 행적을 수사관이 뒤쫓는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로 보인다.
정윤재 - 김상진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부산지검은 정윤재 전 비서관은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이 구속된 8월6일부터 김상진 씨가 재구속된 9월6일 사이에 김씨와 문자를 포함하여 30차례나 통화한 사실을 확인하고 두 사람 사이에 말맞추기를 한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증거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중요한 사건 수사에 있어서 이러한 당사자 사이에 말맞추기 시비는 항상 생기고 있다. 당사자들이 상의하여 자신들에 대한 혐의사실을 부인하고 그에 대해 말을 맞춤으로써 증거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의자들의 방어권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피의자의 방어권의 범위를 벗어나서 피의자 아닌 다른 사람들이 피의자를 위하여 증거를 인멸하거나 증거를 조작하게 되면 증거인멸죄 등으로 처벌받게 된다. 더 나아가 법정에서 위증을 시키면 위증교사죄로 처벌된다. 종전에 변호사도 위증교사죄로 처벌된 사례가 있었다.
물론 변호인은 사건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변호사가 앞장서서 증거인멸이나 위증을 하도록 해서는 증거인멸교사죄 및 위증교사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리고 변호사윤리에 의해서도 그러한 적극적인 증거인멸이나 위증을 교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동피의자 상호간에 말을 맞추는 행위 자체를 처벌할 수는 없다. 이것은 피의자들에게 보장된 방어권의 범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수사기관에서는 수사상 보안을 유지하면서 당사자들이 서로 말을 맞추지 못하도록 각별한 유의를 하여야 한다. 언론에 모든 수사상황이 공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사자들만 서로 말을 맞추지 않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수사기관과 피의자들 사이에는 서로 형사소송법이 보장하고 있는 공격방어방법에 의해 혐의사실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혐의사실에 대한 방어권행사를 위한 증거제출 등을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공정하게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