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나무, 그리고 강물
가을사랑
가을이 깊어가는 시간이다. 가을이 깊어가면 웬지 모르게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은 사랑의 순수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가을에 피어나는 순수한 사랑의 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사랑과 눈물이 함께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저녁에 미사리 둑방을 걸었다. 날씨가 아주 좋았다. 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달까지는 38만킬로미터라는데,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생각해 보았다. 비행기가 날아가는 속력이나 시간을 생각해보니 그렇게 까마득한 거리는 아닌 것 같았다. 서울 인천공항에서 뉴욕 케네디공항까지 40번 정도 날아가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하기야 아주 먼 거리는 아니니까 우리 눈에 달이 크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거꾸로 걸으면서 달을 마주 보았다. 내가 뒷걸음질치면 달은 그대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내가 인력(引力)으로 달을 끌고 있었다. 달이 그 수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내게 끌려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사랑의 인력때문이었다. 달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달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달은 내가 사랑하기에는 너무 높이 떠 있었다. 내가 사랑하기에는 너무 차가와 보였다. 달은 아마 해를 사랑하던가 지구를 사랑해야 할 운명인 것 같았다.
나는 어디까지나 달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입장이었고,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아주 작은 존재였다. 달과 나 사이에는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의 갭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달과 나 사이에는 공기가 없는 진공층이 두텁게 깔려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은하수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잠시동안 달을 내 품에 품어 보았다. 그러자 달도 내 품에 안겨 숨을 쉬고 있었다. 순간 달은 내 사람이 되었다. 나는 달의 사랑을 가슴 속에 영원히 감추어두고 싶었다. 해와 별에게도 숨기고 싶었다.
깊어가는 가을에 벌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에 붉은 꽃처럼 보이는 것은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이었다. 불빛 아래의 꽃이었다. 거짓꽃이었다. 그러나 거짓이라는 단어를 생각한 것은 나였지 나무는 아니었다. 나무는 자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나무는 나무일 뿐 인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다. 인간이 스스로 나무에 다가가 이러쿵 저러쿵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무는 아주 평온해 보였다. 인간이 그토록 갈구하고 있는 평안을 100%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나무였다. 연약한 인간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그 대상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이었다. 사람들이 나무를 보고 배워야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의연한 자세다. 한곳에서 움직이지 않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빛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그 모습이다.
달은 나보다 나무를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달과 나무 사이에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강물이 차갑게 느껴진다. 강물이 가을을 껴안고 있었다. 가을은 달에서 시작해서 강물 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가을의 황홀한 장면들에 빠져 깊은 심호흡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