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사람과 속사람
가을사랑
새벽에 잠이 깨어 일어났다. 3시반경이었다. 책을 보고 있다가 4시 반경 새벽기도를 갔다.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로서는 난생 처음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기회였다. 새벽공기가 차가워 그런지 밖에 나가니 잠이 완전히 깨었다. 새벽이라는 단어가 주는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은 그런 차이가 있다. 새벽은 첫사랑의 감격같았다. 우리는 항상 새벽의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첫사랑의 향기를 잃지 말고 살아야 한다.
도로에는 신호등도 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새벽에 교통사고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차도 사람이 없으니까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고, 사람들로 차가 별로 없으니까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낮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차량통행이 많을 때 필요하고 기능을 하는 신호등체계가 한산한 시간에도 동일하게 작동하니 어색해 보였다.
새벽기도 때에는 주보가 없었다. 그게 약간 이상했다. 늘상 교회에 가면 받아보는 주보가 없으니까 목사님의 설교제목부터가 공고되지 않은 상태였다. 담임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다 나왔다. 목사님께서는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에베소서 3:16)'라는 성경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하셨다. 예배가 끝난 후 교인 한 사람을 집까지 태워다주고 돌아왔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나니 무척 피곤이 느껴졌다. 낮에까지는 괜찮았는데 오후에 강의를 하고 돌아오니 몸살이 나는 것 같았다. 약간 열이 나고 몸살 기운이 돈다. 배도 아팠다. 갑자기 무리를 해서 그런 것 같다. 새벽공기가 찬데 옷을 가볍게 입고 나가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해서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지금까지는 늘상 다른 사람들이 새벽기도에 나간다는 말을 들으면 일은 언제하고 그럴까? 꼭 그래야만 하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질문도 하고, 강의가 끝난 다음에도 5명의 학생이 남아 계속해서 질문을 한다. 학생들이 공부에 열성을 보이면 무척 기분이 좋다.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다.
강의가 끝나고 나오니 벌써 어두워졌다. 해가 일찍 지고 어두워진다. 평화의 전당 앞을 걸으니 너무 경치가 좋다. 정말 좋은 캠퍼스다. 캠퍼스의 10월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걸었다.
믿음과 소망, 사랑이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머리를 들면 하늘이 보이고, 아래를 보면 땅이 보인다. 가슴을 보면 내가 있고,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믿음도 부족하고, 소망도 약하고, 사랑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방황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허망함 때문에 초조하고,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우리가 내려놓아야 할 그 많은 것들을 손에 붙잡고 방황하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느껴지는 경쟁심리, 부와 명예를 위한 한없는 욕망, 세속적인 정욕, 겉사람이 후패하는데도 영원히 변치 않고 천년을 살겠다는 부질없음이 모두 내려놓아야 할 대상들이다.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우리의 삶은 평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 보람을 느낄 수 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애쓰는 유명인사들이 모두 대통령이 되지 못해 어떻게 견딜까? 각 분야에서 모두 출세해서 장관이 되고 총장이 되려고 하는데 뜻을 이루지 못해 어떨까?
모두 재벌이 되어 수만명씩 직원을 거느리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서 어떨까? 100세까지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다리가 아파서 어떻게 될까? 스타로서 항상 스폿라이트를 받아야 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스타에게 그 스폿라이트를 뺏기고 고민하다 자살을 시도하는 연예인의 심정은 어떨까?
나는 가을길을 걸으면서 느꼈다. 머릿속으로는 강원도의 어느 시골의 예쁜 단풍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나는 캠퍼스에서 있으면서도 아주 멀리 떨어진 시골길을 걷는 것을 상상하고 있었다. 사람이 단순히 육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 머리가 하얀 색으로 변해가고, 내 피가 예전처럼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는 것을 알면서 나는 정신적으로 조금씩 성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겉사람은 매일 매일 시들고 약해지고 변해간다. 늙고 병들고 힘이 없어진다.
그러나 사람은 속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속사람을 새롭게 키워나가고 깨끗하게 닦아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가면서 너무나 허망하고 쓸쓸하고 외로워서 견딜 수 없게 된다. 올 가을이 지나기 전에 조금은 달라진 내 속사람의 모습을 영적인 거울에 비춰보고 싶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후서 4:16~18)'
우리의 신체가 늙고 병들어가도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겉사람뿐 아니라 속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속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서로의 속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교류하며 속사람끼리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속사람은 영원한 존재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그 속사람이 깨끗한 영혼을 가지고 항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