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깨달아라


가을사랑


[본문말씀]


그들이 이렇게 견해가 서로 엇갈린 채로 흩어질 때에 바울은 이런 말을 한 마디 하였다.


“성령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여러분의 조상에게 하신 말씀은 적절합니다. 곧 이런 말씀입니다.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구원의 소식이 이방 사람에게 전파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그것을 듣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얻은 셋집에서 꼭 두 해 동안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행28:25~31)


[해설] 


신약의 사도행전은 모두 2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8장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이다. 사도행전은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성장과 발전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사역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전도를 했는지를 기재해 놓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적인 기록을 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 로마제국의 정치적 상황에서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칭하고, 예수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갖은 박해를 무릅쓰고 전도를 했다는 사실을 읽게 되면 감동을 받게 된다. 살아있는 예수님이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살아서 역사하시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장면들이다.


바울이 탄 배는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몰타섬에 도달하게 된다. 배는 다 부서져 버렸고, 사람들은 널빤지나 부서진 배 조각을 타고 뭍으로 나가 구조되었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보는 장면이 연상되는 순간이다. 타이타닉 호는 현대적인 통신과 기계장치를 갖춘 배였지만, 바울이 탔던 배는 2000여년전 아주 구식의 배였다. 그런 배가 난파되어 몰타섬에 닿게 되었고, 그들은 기적처럼 살아남게 되었다.


그 섬에서 바울 일행은 3개월 정도를 지내고 다시 디오스구로라는 이름이 붙은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로 갔다. 마침내 바울은 로마에 도착해서 신도들의 환영을 받았다. 로마에서 바울은 전도를 계속하였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엄숙하게 증언하였고,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관하여 전도하였다. 바울은 예언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였다. 바울이 인용한 구절은 신약 이사야서 제6장 9절과 10절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너희가 듣기는 늘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못한다. 너희가 보기는 늘 보아라. 그러나 알지는 못한다 하고 일러라.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라.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여라. 그리하여 그들이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또 마음으로 깨달을 수 없게 하여라. 그들이 보고 듣고 깨달았다가는 내게로 돌이켜서 고침을 받게 될까 걱정이다.”(이사야서 6:9~10)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기는 하지만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고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존재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인간의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모르는 사람은 교만하거나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신다. 이런 곳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깨닫고 세상을 배우면 살아가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힘든 풍랑을 스스로 찾아 떠나는 것과 같다.


그 후 바울은 로마에서 이방인들을 위해 예수님을 전도했다. 이년 동안 바울은 물질에 대한 욕심을 다 버리고 셋방에서 전도사역을 담당했다. 바울이 좋은 집에서 살지 않은 것은 의미가 있다. 바울이 개인적으로 좋은 집에서 편하게 호강을 하면서 살았다면 오히려 사역의 의미가 반감되지 않았을까 싶다.


바울은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고 사도행전은 끝맺음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미완성 부분은 그 후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다른 사도들의 사역에 관한 역사로 채워져야 할 여백이다. 우리는 바울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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