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다에서 피아노소리를 듣는다


가을사랑



Ⅰ. 바다의 가을


아무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이란 가볍다. 가볍기 때문에 여행의 멋은 더욱 진할 수 있다. 역설 같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많은 준비를 하고 떠나는 여행은 돌아올 때 진한 허전함을 남길 수 있다.


갑자기 바다의 가을이 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바닷가에서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차를 타고 떠났다. 금요일 저녁 시간은 웬지 모르게 여유가 생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그 사물 역시 더 깊이가 있어 보이고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저녁 7시 반에 집을 나섰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섰다. 휴가철과 추석 연휴가 끝나서 그런지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강릉 경포해수욕장에 도착하니 11시가 안 되었다.


어두워진 바다는 부분적으로 하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작은 규모의 파도였지만, 그 은빛은 더욱 선명했다. 캄캄한 바다 위에 작은 은빛은 끊임없이 모래밭은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가을바다에서는 피아노소리가 나고 있었다. 은파를 연상케 하는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높이 떠 있는 달이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가 듣고 달이 듣고 있었다. 바다가 소리를 내고 파도가 소리를 잠재우고 있었다.


가을은 먼곳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터질 것 같은 감성의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사람들은 모래사장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가을바다에 몸을 맡기고 먼곳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사장을 걸으며 나는 가을을 껴안고 싶었다. 가을의 온도는 섭씨 15도에서 18도 사이다. 가을은 내 체온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가을을 껴안고 있으면 나와 가을은 선선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가을의 선선함은 우리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고 있었다.


가을은 항상 연인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바닷가에 서 있는 많은 소나무들이 가을과 나 사이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바닷바람을 견디며 서 있는 소나무들은 사람들이 세파에 견디고 있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똑 같은 존재였다. 똑 같이 파도를 바라보며, 파도에 부딪히며, 파도를 속으로 끌어들이며 생명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았다.


해변에 있는 횟집에 앉아 늦은 시간에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부근에 있는 가라오케에서 들려나오는 노랫소리는 대개 사랑의 한을 담고 있는 노래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받는 사랑의 상처가 바닷물에 씻겨 흘러갔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Ⅱ. 설악산 산행에서 비를 맞다

 

아침에 일어나 속초 방면으로 향했다. 설악산으로 갔다. 산채뷔페식당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산나물을 밥과 함께 손님이 알아서 가져다 먹는 곳이었다. 비선대를 거쳐 대청봉 쪽으로 올라갔다. 대청봉은 설악산의 주봉에 속한다. 1708미터 고지다. 도중에 보니 위험한 바위산을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몹시 위험해 보였다.


역시 설악산 경치는 대단했다. 깊은 산 속에서 높이 솟아오른 바위산들을 바라보며 올라갔다. 계곡에서는 물도 흐르고 있었다. 가을이라 공기는 아주 상쾌했다. 약간 덥기는 했지만 구름에 가려 해도 보이지 않았다. 신흥사에서 5킬로미터를 올라갔는데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비는 꾸준히 내렸다. 바위가 많고 돌이 많아 하산길은 미끄러웠다. 중간에 미끄러져서 넘어졌지만 다치지는 않았다. 대청봉까지는 10킬로미터가 넘기 때문에 제대로 올라가려면 5시간 정도는 잡아야 된다. 숲속이라 비가 와도 많이 젖지는 않았다. 내려와서 배낭커버를 샀다.


속초시내로 들어와서 해수피아라는 사우나로 갔다. 4층과 5층 전체가 사우나 찜질방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피로를 풀었다. 속초해수욕장으로 갔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입구에 있는 횟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차를 탔다. 밤 10시 반에 출발했다. 고속도로가 한산해서 좋았다. 서울에 도착하니 1시 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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