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istory of Israel (3)

 

가을사랑

 

[3] 바벨론 패권시대(B.C.640~539)

 

고대 근동의 맹주로 부상했던 앗수르는 B.C 627년 앗술바니팔의 사망과 함께 극적이면서도 빠른 속도로 퇴보하기 시작했다. 유다 지역을 관할하던 앗수르의 통치는 애굽의 지배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신흥세력 바벨론의 부상은 애굽으로 하여금 앗수르와 연합하게 만들었다. 유다가 멸망하기 전 100년의 역사는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바벨론, 애굽 세 나라와의 상황에 따라 위기와 안정을 되풀이하였다.

 

유다는 B.C.621년 요시아 개혁의 결과로 왕국의 회복과 재통일을 위한 희미한 희망과 기대를 가졌으나, 주변 국제정세의 불안과 대혼란으로 그 이후 B.C.587년까지 25년의 기간은 유대에게 아주 가혹한 시련이었다. 유다를 다스렸던 5명의 왕 중 2명은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3명은 유배지에서 죽었다.

앗수르는 새롭게 등장한 바벨론과 싸워야했고, 바벨론은 애굽과 싸움을 벌였다. B.C.610년 앗수르는 하란성까지 밀려 있다가 바벨론과 스키타이 동맹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요시아가 통치했던 B.C 640~609년 사이의 31년 동안 유다는 외부의 적과 전쟁에 휘말리지 않았으며 나라의 재건과 신앙과 관련된 영적 문제에 몰두할 수 있었다. 요시아는 우상을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전을 청소하고 보수하였다. 유다 쇠퇴기에는 스바냐(B.C. 640~609년), 하박국(B.C.615~598년), 나훔(B.C.663~612년), 예레미야(B.C.627~562년) 등이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요시아가 죽고 나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대를 이었다. 당시 바벨론은 앗수르와의 싸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틈을 타서 애굽의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를 감금하고 그의 형인 여호와김을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애굽은 유대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B.C.605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자 유다는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났다. 바벨론은 애굽을 상대로 계속해서 공격을 했다.

 

바벨론과 애굽의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유다는 애굽의 도움을 받으려고 기대하면서 바벨론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그 때문에 B.C.598년 여호와김은 죽고 말았다. B.C.597년 느부갓네살은 요시아의 셋째 아들인 맛다니야를 유다 왕으로 삼았다. 맛다니야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B.C.587년까지 통치하였다. 맛다니야의 이름은 나중에 시드기야로 바뀌었다.

 

시드기야는 애굽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에게 반란을 일으키기로 작정하였다. 이에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성을 포위하게 되고, B.C.586년 7월 예루살렘은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두 아들을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살해하였고, 시드기야도 두 눈이 뽑혔다. 유다가 멸망한 후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다랴도 왕손 이스마엘에 의해 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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