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istory of Israel (2)
가을사랑
[2] 앗수르의 지배
원래 앗수르는 유다에 대해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주로 다메섹과 이스라엘을 최종 공격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B.C 740년 이후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아하스는 친앗수르 정책을 채택하여 권력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유다는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애굽은 국내의 정치적 혼란과 왕권 경쟁으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유다는 앗수르의 유다는 앗수르의 속국이 되면서 주변에 팔레스타인의 다른 반자치국가들과 함께 외로운 변방으로 남게 되었다. 유다는 반앗수르 동맹에 가담하지 않았다. 요담은 에루살렘 성전의 문과 오벨 성벽을 건설하고 성읍들을 확장하였으며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요새와 망대를 세우는 등 여러 가지 선한 일을 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B.C 729년에서 B.C 686년까지 42년간 통치하였다.
그후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55년간 통치하였다. 반앗수르 동맹에 대한 동참을 거부해 온 아하스(B.C. 743~715)는 사면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 다메섹의 르신과 사마리아의 베가의 침입을 받았다. 아하스에게 가장 큰 전쟁은 수리아 - 에브라임 동맹과의 전쟁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두 왕의 협박에 굴하지 말고 독자적인 노선을 유지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의 언약적 개입에 관한 선지자의 권고를 거절하고 대신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B.C 727년 디글랏빌레셀이 죽자 사마리아의 호세아가 반란을 일으켜 조공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살만에셀 왕이 즉각적인 공격을 가해오자 이스라엘 왕은 다시 조공을 바치기로 결정하였다. 살만에셀 왕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B.C 724년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히스기야 왕은 B.C. 729년부터 686년까지 42년간 통치하였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왕하 18:3~7). 그는 성전을 다시 열고 수리하였다. 그리고 모든 이방 종교들을 파괴하였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바벨론을 선점한 틈을 다서 다시 한번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B.C 701SUS 산헤립이 유다와 애굽을 향해 서쪽으로 진군을 하였다. 산헤립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성은 포위되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에 조공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했다.
히스기야가 죽과 나서 그의 아들 므낫세는 B.C 696년부터 642년까지 55년간 통치하였다. 므낫세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전혀 없었다. 므낫세는 앗술바니팔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에살핫돈은 B.C. 648년경 그의 부친 산헤립이 파괴한 바벨론을 다시 재건하여 앗수르 제국의 일부로 편입시켰다. 므낫세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4~5년 정도 더 통치를 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은 B.C 642년부터 640년까지 2년간 통치했다. 므낫세는 왕궁 대신들의 음모에 의해 죽었다. 이 무렵 앗수르가 지배하던 한 세기는 끝나가고 있었다. 바벨론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던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