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istory of Israel (1)
가을사랑
[1] 앗수르의 확장과 사마리아 함락
디글랏빌레셀 3세는 왕권을 찬탈한 후 B.C.745년부터 727년까지 다스렸다. 신 앗수르 시대는 B.C.745년부터 612년까지를 말한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북서쪽 아람 국가인 아르밧, 북쪽의 알레포, 운키를 상대로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럼으로써 북부 수리아와 지중해 북부 팔레스타인 연안에 대한 통제권이 확고해졌다.
이와 같이 디글랏빌레셀 3세가 앗수르 제국을 확대하고 세력을 확장시켰음에도 불구하고 호세아 왕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호세아를 감금하고 3년 동안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이것이 바로 종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호세아 왕은 앗수르에게 반란을 일으키면서 애굽 왕 소(So)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의 애굽은 자체내의 사정이 어려워 호세와 왕을 도와줄 형편이 되지 못하였다.
B.C 752년 살룸은 스가랴 왕을 암살하고 왕위를 찬탈하였으나 므나헴에게 암살되었다. 므나헴은 디글랏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침으로써 왕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앗수르의 다음 목표는 블레셋이었다. 앗수르의 블레셋 진격은 애굽에서 시작되는 무역로를 통제하고 이스라엘이나 시리아가 애굽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한 통로를 차단하려는 목적을 지녔다.
B.C.733년 이스라엘의 베가를 포함한 아람의 작은 나라들은 앗수르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였다. 이 동맹이 바로 유다왕 아하스가 가담하지 않으려고 했던 동맹이며, 그로 인해 다마섹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B.C. 732년 디글랏빌레셀은 다메섹으로 진격하여 그곳 왕 르신을 처형하고 다메섹이 다스리던 지역을 한 행정구역으로 편입시켰다(왕하 15:29).
이로 인해 이스라엘의 영토는 에브라임 산의 중앙산지로 축소되었다. 디글랏빌레셀 3세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베가 왕을 퇴임시키도록 모종의 조치를 취하였으며(왕하 15:30) 호세아를 새로운 후임 왕으로 인정하였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의 19번째이며 마지막 왕으로 엘라의 아들 호세아를 맞이하게 되었다.
호세아는 불과 두 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왕국의 아홉 번째 왕조를 출범시키며 이스라엘의 마지막 9년을 다스렸다(B.C 732-722). 그는 과거 이스라엘이 영토 가운데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사마리아 도성 및 그 주변의 일부 에브라임 산지를 다스렸다. 호세아 왕은 디글랏빌레셀 3세의 후계자인 살만에셀 5세에 대한 조공을 중단하고 애굽의 소에게 원조를 요청하였다. 살만에셀 5세는 호세아 왕의 이와 같은 반란에 대해 사라미를 3년간 포위하여 마침내 함락시켰다. 사마리아 포위공격은 B.C.724년부터 722년까지 계속되었다. 사마리아 성이 함락된 B.C 722년 27,290명이 포로로 잡혔다. B.C 734년부터 B.C 669년까지 65년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강제이주가 진행되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이 왜 사마리아에 필요하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왕하 17:7~18). 여호와께서 도와 줄 수 없거나 이스라엘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주권에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세의 법에 이미 경고되었던 심판이 결국 성취된 것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포로 유배생활이 B.C 734년부터 약 65년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B.C. 734년부터 669년까지 이사야의 예언대로 정확히 65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강제이주가 진행되었다. 이주 정책은 사르곤 2세의 손자인 앗수르 왕 에살핫돈 시대에 와서야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