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25장

 

가을사랑

 

베스도 총독이 부임한 지 3일 뒤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갔더니, 대제사장들이 바울을 고소하면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주기를 청원하였다. 유대인들은 베스도 총독이 자신들이 요구대로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송하면 그 중간에서 바울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만일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보냈다면 바울은 살해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스도 총독은 이들의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가이사랴에서 재판을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10일 정도 지난 다음 베스도는 가이사랴에서 바울에 대한 재판을 열었다. 재판을 하기 전에 베스도는 먼저 바울에게 물었다.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재판을 받겠느냐?”이와 같이 물은 것은 대제사장들이 청원하였던 것을 염두에 두고 베스도가 유대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들이 고소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가이사에게 호소합니다.”바울의 이러한 변론에 베스도는 가이사에게 보낼 것이라고 답했다.

 

바울이 말한 가이사에 대한 호소는 로마 시민에게 인정된 중요한 권리였다.가이사는 로마 황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당시 로마 황제는 네로 황제였다. 네로 황제는 서기 54년부터 68년까지 14년 동안 통치하였다.

 

며칠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있었는데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말을 듣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베스도는 바울을 불러 아그립바 왕앞에 세웠다. 여기에 나오는 아그립바 왕은 아그립바 1세의 아들 말커스 율리어스 아그립바 2세를 의미하며 유대에서 약 50년을 통치하였다. 성전의 지배권 또는 대제사장의 임명권까지도 행사하였으며 서기 100년경 후계자가 없는 상태에서 사망하였기 때문에 헤롯의 마지막 왕이라고도 불리운다. 베스도 총독은 여전히 자신은 바울에게서 마땅한 죄목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바울에 대한 재판은 바울이 정치적인 선동과 소요를 일으켰다는 명목으로 시작되었지만, 벨릭스는 오랜 경험에 비추어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비난이 종교적인 배경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벨릭스 총독은 유대인들 내부의 종교적인 분쟁을 조정하고 자신의 관할 구역 안에서 평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재판을 연기시켰다. 벨릭스가 총독으로 근무하는 동안 가이사랴 지방에서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사이에 강한 적대감이 형성도어 있었다. 벨릭스 총독의 입장에서 볼 때는 재판을 공정하게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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