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역사

 

가을사랑

 

페르시아는 성경에 파사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파사제국의 왕 다리오는 메대와 바사지방을 다스렸다. 다리오의 사위인 고레스가 바사 왕이 되었을 때 유대인들로 하여금 성전을 건축하도록 승낙하였다. 유대인들은 바벨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데 이때가 기원전 516년이다. 말라기, 스가랴, 학개와 같은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시기는 페르시아 왕국의 전성기였다. 33장으로 구성된 마지막 예언서인 말라기서는 기원전 475년부터 450년 사이에 씌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알렉산더가 소아시아에 진군한 시기는 기원전 333년이었다. 알렉산더는 그리스에서 애굽까지 헬라문화를 전파했다. 마게도냐에서 일어난 알렉산더 왕은 소아시아, 터키지방을 지나 안디옥을 지나 팔레스탄, 시리아, 애굽까지 진군했다. 알렉산더 왕은 애굽에 알렉산드리아라는 항구도시를 건설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고 난 후 안티고누스가 지배를 하였고, 그 후 새롭게 일어난 것이 툴레미 왕조였는데, 툴레미 왕조는 유대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툴레미 왕조는 기원전 320년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애굽에 왕궁을 두었는데 유대인들을 애굽에 정착하게 하고 호의를 베풀었다. 이때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였으며, 70인역이라는 성경이 만들어졌다. 애굽의 알렉산드리야는 유대사상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셀류쿠스 왕조가 동시대에 일어났으며 시리아 왕조가 알렉산더 제국을 계승하게 되었다. 기원전 199년까지 애굽과 전쟁하여 팔레스타인지방을 점령하고 헬라문화를 이식시켰다. 셀류쿠스 왕조는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제국을 지배하였다. 셀류쿠스가 영토를 넓히려고 애굽을 침범하였고, 유대인들을 핍박하였다.

 

셀류쿠스는 유대인들의 이름도 헬라어로 바꾸게 하고 히브리사상을 매도하였다. 북쪽 지역에 있던 셀류쿠스 왕조는 남쪽에 있던 툴레미 왕조를 침략하였는데, 툴레미 왕조는 유대사상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이와 반대로 셀류쿠스 왕조는 유대사상을 멸시하는 입장이었다.

 

셀류쿠스 왕조는 제우스신을 하나님의 신과 같은 위치에 놓고 이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박해하였는데 이때 많은 유대인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이러한 셀류쿠스 왕조의 유대인탄압정책에 맞서서 유대인들이 일으킨 혁명이 마카비 혁명이다. 이 무렵 제사장 맛다디아가 일어나 헬라식으로 제우스 신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이단들을 무너뜨렸다. 제사장 아들이 5명과 함께 일어나 헬라식에 반항을 하였다가 피신하였다. 이들은 숨어서 정통파 유대인들을 규합하여 저항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안식일에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유대사상을 고수하려고 안식일에는 헬라인들이 공격을 해와도 대항을 하지 않고 있다가 많은 죽임을 당했다. 아들 중 셋째 아들인 유다 마카비가 일어나 유대인들을 규합하고 군대를 많이 보유함으로써 헬라파를 많이 격파하고 제우스 신을 부수고 새 성전을 세웠는데 나중에 시리아 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시리아 군대가 다시 쳐들어오자 마카비는 진격을 하자고 했지만 부하들은 화친을 맺고 마카비는 쫓겨나 전사를 하고 형제 요나단이 다시 일어났으나 시리아 군데에 정면으로 붙지 않고 화친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기 전 시리아군대의 힘을 얻어 유대 제사장이 되었고, 대제사장의 직무를 받게 되었다. 그 뒤에 형제들이 계속하여 혁명시대를 이끌어갔고, 마지막으로 시몬 하스모니안이 일어났으나, 지나치게 야망에 찬 나머지 사위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후 시몬의 셋째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가 왕조를 이끌어갔고, 그 다음 하스몬 왕조가 일어났다. 시리아 정부는 유대인들이 시리아에 종속되고 전쟁시 출정한다는 조건으로 힐카누스 정부를 승인하였는데 이 지역이 에돔지역이다.

 

유대인들 중에서 헬라문화를 수용하고자 하는 부류가 있었는데 이들을 사두개인이라 불렀다. 유대사상을 전승받은 사람들이 바리새인이다. 힐카누스는 기원전 104년에 죽고 그 자녀들 시대에는 마카비의 혁명은 사라졌다. 자녀들의 분쟁으로 힐카누스의 장자 유다 아리스토 볼로스, 형제 얀네우스가 번갈아 가면서 분쟁하면서 유대를 다스렸다. 그 중에 두 형제를 왔다 갔다 하던 미망인 알렉산드리아가 있었는데 이 미망인에게 통치가 넘어가 7년간 유대를 통치하였다.

 

사두개인은 아리스토 볼로스를 좇아서 헬라적이고 바리새인은 힐카누스를 좇아서 유대적이었다. 나라에서는 유대 모세 율법으로 한 히브리 중심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서로 사상이 다른 부류들이 공존하였다.

 

로마시대가 되면서 사두개파에서는 아리스토 볼로스, 바리새파에서는 힐카누스를이 각각 유대의 제사장직을 맡게 되었다. 이로 인해 헬라사상이 확산되었다. 이스라엘은 로마가 다스리는 시리아에 있는 한 행정구역에 해당하였다. 안티파터가 로마로 피신한 것은 기원전 41년으로서 그는 힐카누스와 손을 잡아 로마를 칭송하였다. 그가 헤롯의 아버지이며 안티파터는 헤롯을 언제인가 왕으로 세워 주겠다는 밀명을 로마로부터 받았다.

 

로마가 다스리게 되자 안티파터는 헤롯을 데리고 유대인의 왕이란 창호를 받아 로마에서 왕위를 받아 예루살렘에 입성하였다. 이 헤롯은 예수님 탄생 때 유아학살과 아내들이 많고 말을 듣지 않으면 살해하는 악행을 했으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대인들이 좋아 하는 성전을 지었다. 이 성전이 헤롯 성전이며 유대인들이 성전을 건축할 때 함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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