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2)
가을사랑
6시 15분에 출발할 비행기를 타기 위해 1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절차를 마치고 게이트에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 가지고 간 ‘4001’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신정아가 쓴 자전적 에세이다. 지난 3월 15일 출간되어 많이 팔리고 있다는 화제의 책이다.
이 책의 사회적 의미는 너무 논란이 많아 생략하기로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복잡하고 추잡한 현실을 고발하는 의미는 큰 것 같아 흥미있게 읽었다.
<오랜 시간 겪은 시련 덕분에 나의 이기적인 마음도 많이 바뀌었다. 내가 겪었던 작은 불행이 나중에 더 큰일에 도움이 될 자양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아파하기보다는 감사를 드릴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선물로 받았다. 다만 수감 생활 내애 슬픔에 젖은 채로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낸 것이 후회되었다. 나는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은 행복한 생각만 하고 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세상이 만들어놓은 신정아의 모습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또 내가 예전의 나로 고스란히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나는 어쨌건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나의 삶을 기대감으로 맞으려 한다.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 신정아 지음, 4001, 419~420쪽에서 -
책을 거의 다 읽고 느낀 소감은 인간이란 역시 연약하고 추잡하고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추악한 면을 가지고 있다. 온갖 위선을 떨고 겉으로는 고상한 인격을 보여주려고 애쓰지만, 그 가면을 벗기고 들여다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많다. 누가 누구를 욕하고,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을 대하고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남에게 잘못한 사람,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사람은 침묵이 금이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않고 속에 간직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된다. 잘못을 변명해도, 잘못은 여전히 남는다. 변명은 또 다른 잘못을 키우는 독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6시 15분에 출발하기로 했던 비행기는 제주도 부근의 돌풍과 기상 악화로 제주도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어 지연된다고 했다. 언제 출발할 지 기약이 없어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9시 15분에 출발하는 아시아나 표를 새로 샀다. 그 표도 김포가 아니고 인천으로 가는 표였다. 모든 표는 만석이었다. 단체여행객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했다. 공항에서 오래 기다리기 싫어 택시를 타고 다시 제주시청 부근으로 갔다. 비교적 번화한 곳이라 식당과 술집이 많은 곳이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공항으로 갔다.
9시 15분 출발도 상당히 지연되었다. 거의 10시가 되어 아시아나 비행기가 출발했다. 날씨 때문에 비행기는 도중에 많이 흔들거렸다. 위험도 느껴졌다. 인천공항에서 내려 공항철도를 탔다. 공항철도는 인천공항에서 밤 11시 46분까지 출발한다고 한다. 철도는 지상으로 달렸다. 밖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차를 타니 12시가 넘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고 하니 요금정산차량 통과게이트도 작동이 안 되고, 미정산차량 돈 받는 요금정산부스도 불이 꺼져 있었다. 비행기가 연착되는 것을 모르고 사람들이 퇴근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곳에서 많은 차량들이 30여분간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 두 사람이 와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일부 사람들은 직원들과 큰소리를 싸우고 있었다. 내가 가서 싸움을 말리고 일단 돈을 받고 차단기를 열어주도록 했다.
올림픽대로를 달리는데 비가 많이 내렸다. 올림픽대로의 가로등들이 유난히 아름다운 불빛으로 눈에 들어왔다. 비를 맞으며 차안에서 7080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 그리고 최진희, 배호의 노래를 들으면서 감상에 빠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