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공작 사기사건

 

가을사랑

 

고급 호텔에 가면 외제차가 많이 드나들고 있다. 상류층의 사람들이 특히 많이 이용하는 호텔에 가면 더욱 그렇다. 신라호텔이나 하이얏트호텔 같은 곳이 그렇다. BMW를 타고 온 여자 손님이 발렛 파킹을 하고 호텔 로비로 들어선다. 외제차를 타고 오는 여자의 모습은 매우 세련되어 보인다. 날씬한 몸매에 매력적인 얼굴, 우아한 옷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말쑥하게 생긴 청년이 깨끗한 정장을 하고 그 여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머리에는 무스를 발랐다. 세련되고 교양 있어 보였다. 영어로 된 타임지를 끼고 있다. 청년은 여자에게 다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사모님, 말씀 좀 여쭙겠는데요? 저는 미국에서 온 재미교포 대학생입니다. 죄송하지만, 양수리를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지요?” 깨끗한 옷차림에 세련된 매너였다. 언뜻 봐도 그가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재미교포 같았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호텔 종업원에게 물어보세요.” 신라호텔에서 양수리 가는 길을 가르켜 준다는 것은 누구도 쉽지 않은 일이다.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겠는가? 애당초 불가능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 답변을 한 여자 손님은 그냥 커피숍으로 들어간다.

 

강일(27세, 가명)은 고급 외제차를 혼자 운전하고 오는 여자 손님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말을 붙여본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끊임없이 노력하면 언젠가는 성공한다. 자꾸 해 보면 테크닉도 늘게 된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계속 말을 붙여보는 것이다.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일을 마치고 나오는 여자 손님에게 다시 말을 건다. “아 아까 뵈었던 분이시지요. 이제야 일이 끝나신 모양이군요. 저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 사정을 전혀 모릅니다. 혹시 시간이 있으시면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차 한 잔 대접할게요.”

 

대부분의 여자들은 시간이 없다면서 그냥 간다. 처음 보는 남자에게 시간을 허락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다른 일정 때문에 가야할 사람도 있다. 그런데 아주 드물게 이런 제의를 받아들이는 여자가 있다. 그날 따라 기분이 나쁜 일이 있었다든가, 갑자기 약속이 펑크가 나서 시간이 있다든가, 아주 기분 좋은 일이 있다든가 할 때다. 강일에게 시간을 잠시 내 준 성숙 씨(35세, 가명)는 커피숍에서 편한 대화시간을 갖는다.

 

강일은 먼저 자신의 소개를 한다. 자신은 미국에서 태어나 계속 살았다. 아버지가 미국에 이민 가서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스코틀랜드에 몇 천억 원의 투자를 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아버지에게 백작 칭호를 수여했다. 자신은 공작 칭호를 받았다. 실제로는 공작이 백작보다 높은 칭호인데 강일은 그런 사실도 잘 모르고 있었다.

 

자신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19세기 영국 영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에밀리 브론테(1818 ~ 1848)가 쓴 소설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원서로 공부하고 있다.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은 사랑의 이야기를 쓴 명작이다. 자신은 그 소설을 현재 영어 원서로 공부하고 있다면서 그 사랑의 스토리에 감명을 받았다. 자기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면서 소설의 내용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날 따라 이상야릇한 심리상태에 있는 성숙은 멋있게 생긴 젊은 남자가 영어 원서로 공부하고 있는 사랑의 스토리에 관한 소설을 실감 있게 설명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강일은 여자의 반응을 본 다음 자신의 아버지가 고국에 가서 뜻있는 사업을 할 것이 있는지 알아 보라고 해서 왔다. 일차로 100억 원 정도로 시작해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경치가 아름다운 양수리라는 곳에다가 스코틀랜드 스타일로 호텔을 멋있게 지어보고 싶다고 했다. 호텔 이름은 소설 이름을 따서 폭풍의 언덕이라고 지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사기를 잘 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이와 같이 중요한 일을 상의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말에 솔깃한 성숙은 마음이 동했다. 강일과 함께 양수리에 가서 경치 좋은 스코틀랜드 풍의 멋있는 호텔을 짓는데 일조를 할 생각으로 안내를 하기로 했다. 강일은 성숙에게 자신은 미국에서 벤츠 600을 운전하고 다니지만 한국에 와서는 일부러 차를 운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도로사정이 나쁘고 운전자들이 난폭운전을 해서 도저히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성숙은 자신의 BMW로 강일을 태우고 안내를 한다. 강일의 초호화판 생활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환상에 빠진다. 이런 남자를 알아 두면 손해 볼 것은 없을 것 같았다. 그 후 몇 차례 양수리에 가서 드라이브를 하고 환상적인 호텔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술을 마시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육체관계를 맺게 된다.(point① 사기꾼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라)

 

강일은 아버지가 사업자금을 일차로 10억 원을 송금했는데 외국환거래법 때문에 찾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이유로 여자에게 돈을 빌려 쓴다. 여자는 며칠 있으면 10억 원을 찾는다는 말을 믿고 돈을 빌려준다. 그러나 이것은 철저한 사기였다. 강일은 이런 사기행각을 계속해서 수많은 여자들에게 되풀이했다. 날이 갈수록 사기수법은 세련되고 대담해졌다. 많은 여자들이 이런 사기수법에 피해를 입었다. 한 사람에게서 많은 돈을 뜯는 것도 아니었다. 대개 몇 십만 원 내지 몇 백만 원의 사기행각이었다.

 

나중에 강일은 구속되었다. 피해자들은 강일의 허황된 사기수법에 걸려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강일의 경우 피해 여성들과 육체관계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강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강제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일의 신분이나 재산정도에 대해 속았기 때문에 몸을 허용했다고 해도 그것은 성범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결국 강일이 신분을 속이고, 미국에서 돈이 온다고 속여 피해자들의 돈을 사취한 부분만 사기죄가 성립하게 되는 것이다.

 

(point① 사기꾼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라) 아무런 의심 없이 상대방을 믿고 있으면 사기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성숙의 경우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생각을 했더라면 강일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알아챘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은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 실제로 돈을 넉넉하게 쓴다. 말로는 돈이 많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돈을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강일이 돈 많은 재미교포의 아들로서 한국에 와서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혼자 그렇게 돌아다닐 이유가 전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본격적으로 도와주었을 것이다. 결국 사람을 만나 교제를 할 때는 상대방을 무조건 믿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하나씩 확인이 될 때 그때 믿어야 한다. 성급하게 믿음을 주는 것이 파멸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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