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의 비상한 머리
가을사랑
화창한 봄날이었다. 서울의 봄은 정말 아름답다. 개나리와 철쭉의 화사한 색깔을 보면 마음은 그냥 환해진다. 인천공항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돈다. 여행이 주는 발랄함이랄까? 화사한 옷차림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다나까 회장은 젊잖은 신사복에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손에는 지팡이도 들고있었다. 그야말로 회장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다나까 회장을 수행하고 있는 비서가 호들갑을 떤다.
“어이. 박 기사, 출발합시다. 한남동에 있는 지리산 한의원으로 갑시다.”
“예. 예. 알았습니다. 잘 모시겠습니다.”
김 비서는 렌트카를 미리 대기시켜 놓고 사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김 비서는 렌트카 기사에게 이번에 모실 손님은 일반 손님이 아니다. 일본에서 나오시는 회장인데 재일교포다.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대그룹의 회장이다. 일년에 매출액이 수천억 원이라고 했다.
기사에게 팁으로 미리 10만원을 주었다. 회장을 잘 모시면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귀뜸을 했다. 다른 사람과 달리 회장을 모실 때에는 뛰어다니면서 차문을 열을 것. 회장에게 인사할 때는 90도로 허리를 굽힐 것. 회장을 빤히 쳐다보지 말 것. 회장에게 아무런 말도 걸어서는 안 된다는 등 재벌 회장에 대한 기사로서의 행동수칙을 일러주었다.
이번에 하는 것을 보아서 앞으로 다나까 회장이 한국에 올 때마다 전속기사로 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렌트카 기사는 돈 많은 회장에게 잘 보이면 앞으로 어떤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10만원이나 되는 팁을 주는 것으로 보아 보통 사장이 아니라는 감을 잡았다.
인천공항에서 빠져나온 차가 한남동 지리산 한의원에 이를 때까지 김 비서는 회장님에게 몇 가지 보고를 했다. 기사가 가만히 들어보니까 보통 큰 규모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국의 정권의 실세들은 모두 다 아는 사람들이었고, 100억 원은 아무 것도 아닌 듯 대화하고 있었다.
차 안에서 김 비서는 지리산 한의원 원장에게도 지금 가고 있는데 조금 늦을 것 같다고 통화를 했다. 김 비서는 이미 지리산 한의원을 사전 답사하고, 미리 몇 차례 통화를 한 상태였다.
일본에서 엄청난 큰 회사의 회장이 한국에 와서 지리산 한의원을 방문하려고 한다. 회장이 사업상 관계가 있는 몇 몇 한국의 장관들에게 한약을 선물하려고 한다. 앞으로 잘 보이면 일본 회장은 계속해서 거래를 할 것이고, 일본에 있는 다른 사업가들도 모두 지리산 한의원을 소개해 주려고 한다는 취지였다.
정 원장은 만사 제쳐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잘 하면 많은 한약을 팔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을 잘 잡으면 일본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업가를 고객으로 확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의원의 매출이 크게 오를 것은 밤에 불을 보듯 뻔했다. 마음은 크게 부풀어 올랐다.
드디어 회장 차가 도착했다. 정원장은 반갑게 맞았다. 회장은 역시 듣던대로 점잖았다. 70이 넘은 나이에 온유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한국말은 잘 못하는 것 같았다.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가끔 일본말로 비서에게 무어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주로 비서가 이야기를 했다.
일본에서 대단한 사업가고 엄청난 재력을 가졌다고 했다. 주로 소니 회장을 만나고 미쓰비스 회장과 골프를 치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가끔 오는데 대그룹 회장이나 청와대 관계자나 만난다고 했다.
정 원장은 김 비서가 전화로 주문한 대로 한약을 지어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주었다. 130만원 정도의 약값이었다. 다나까 회장은 지갑에서 200만원짜리 수표를 내밀었다. 지갑에는 일본돈이 많이 들어있었다. 수표도 여러 장 있었다.
정 원장은 전혀 의심할 상황이 아니었다. 거래를 트는 것이 중요했다. 정성껏 한약을 포장하고 나머지 70만원을 현금으로 건네주었다. 다나까 회장이 건네주는 명함을 구겨질까봐 잘 간직하고 배웅을 했다. 밖에는 고급승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나까 회장이 나가자 기다리고 있던 기사가 뛰어 다니면서 굽실거리고 시중을 들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회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 원장도 아주 정중하게 배웅을 했다.
회장 일행이 떠나자 그 차 번호를 적어 두었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기 때문에 수표 조회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월요일 은행에 넣었다. 그런데 이것이 어쩐 일인가? 위조수표였다.
다나까 회장은 실은 수표위조전문범이었다. 은행에서 제대로 발행된 10만 원짜리 수표를 수십장 구입해서 자유자재로 금액을 변조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진 전과자였다. 그 때문에 교도소생활도 십여년 했다. 그러면서 그 기술을 써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해서 그런 생활을 했다.
그는 은행에 수표조회가 어려운 주말을 이용했다. 그런 방식으로 룸살롱에 가서 위조수표로 술값과 아가씨 팁을 계산했다.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다.
렌트카 기사는 경찰에 의해 공범으로 몰려 엄청난 시련을 당했다. 한의원 원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범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렌트카 기사가 무엇 때문에 한 번 차를 쓰는 사람에게 그토록 깍뜻하게 90도로 절하고 뛰어다니면서 문을 열고 닫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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