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추심행위와 업무방해죄
가을사랑
Ⅰ. 채권채무관계에서의 형사문제
돈을 빌려준 사람의 입장에서는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채무자가 돈을 약속한 날짜에 제대로 갚지 않는 경우에는 채권자는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기죄 등으로 형사고소를 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또는 강제집행을 면탈하기 위한 목적에서 허위로 재산을 양도하거나 은닉하였다는 이유로 강제집행면탈죄로 고소를 합니다.
이처럼 채무자가 돈을 제대로 갚지 않는 경우도 문제지만, 채권자가 돈을 받기 위해 채무자를 협박하거나 공갈행위를 하기도 하고, 업무를 방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하기 위해 개인의 신용정보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빼냄으로써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Ⅱ. 채권추심행위와 업무방해죄의 성부
1. 채권자가 채권을 추심하기 위해 채무자의 사무실을 방문하거나 집에 찾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지나치게 자주 찾아가거나 사무실에서 나가지 않고 장시간 있는 경우, 퇴거불응죄나 업무방해죄의 성립이 문제됩니다. 또는 계속해서 채무자에게 전화를 걸어 채무변제를 독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2. 어느 대부업체 직원이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하여 소액의 지연이자를 문제 삼아 법적 조치를 거론하면서 채무자의 휴대전화에 수백 회에 이르는 전화공세를 하였고, 견디다 못한 채무자는 대부업체 직원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했습니다. 이 사안이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되는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3. 구체적인 사안 내용을 보면, 갑은 2003. 9. 8.경 부터 같은 해 10. 23.경 까지 자신이 근무하는 대부업체 회사 사무실에서 피해자 을이 위 회사로부터 대출받은 200만원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지급을 독촉하기 위하여 을의 집과 핸드폰 등에 460여 통의 전화를 걸어 동인으로 하여금 정상정인 업무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4. 검사는 갑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심판결은 갑을 비롯한 위 회사의 직원들은 2003 .9 .8. 부터 같은 해 10. 25. 까지 460여 회에 걸쳐 피해자 을에게 전화를 하였는데, 이 중 실제 통화가 된 것은 19여 회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통화가 되지 않거나 을이 발신번호를 확인하고 바로 끊어 버린 사실, 갑은 오전 8시 이전이나 오후 8시 이후에는 을에게 전화를 하지 아니하였고, 대부분의 전화를 을의 휴대폰에 건 사실, 을이 운영하는 회사에 전화한 것은 10회에 불과한데, 회사의 여직원이 아닌 을과 통화된 것은 단 한 번인 사실을 인정하고, 이러한 인정 사실에 의할 때 채권회수를 위하여 채무자에게 전화를 건 갑의 행위가 을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족한 세력, 즉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하여 을의 업무가 방해 당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검사는 이에 대하여 상고하였습니다.
Ⅲ. 업무방해죄에 관한 대법원의 판례 태도
1.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판결이 업무방해죄에 있어서의 위력 또는 업무방해의 의미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한 위법을 저지른 것이라고 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2.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업무방해죄에 있어서의 위력이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 혼란케 할 만한 일체의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아니하며, 폭행 협박은 물론 사회적 · 경제적 · 정치적 지위와 권세에 의한 압박 등을 포함한다고 할 것이고, 위력에 의해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되는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며(대법원 1995. 10. 12. 선고 95도1589 판결 참조), 업무방해죄의 성립에 있어서는 업무방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함을 요하는 것이 아니고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면 족하다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대법원 1991. 6. 28. 선고 91도944 판결, 1960. 8. 3. 4293형상397 판결 등 참조).
채권자의 권리행사는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하는 것이므로, 가령 우월한 경제적 지위를 가진 대부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채무자를 압박하는 방법으로 채권추심행위를 하였다면 이는 위력을 이용한 행위로서 위법하고 그로 인하여 채무자의 업무가 방해될 위험이 발생하였다면 업무방해죄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고 합니다.
3. 또한 대법원은 비록 실제 통화 연결된 횟수가 19회에 불과하다고 추정하더라도 비정상적인 전화 공세에 압박감을 느낀 나머지 통화를 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봄이 상당하며 심한 채무독촉을 당한 후에는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 그 자체만으로도 심리적 압박감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고, 원심은 피해자가 통화과정에서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들고 있으나 위력에 상당한 지는 주관적인 기준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고 더욱이 피해자의 증언에 의하면 피고인이 먼저 고문변호사를 통해서 법적으로 하겠다는 말을 하기에 그렇게 말하였다는 것에 불과한 사정을 알아볼 수 있는바, 이러한 사정뿐만 아니라. 대부업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주로 은행이나 카드사와 같은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소외된 저신용자들로서 사회 경제적으로 곤궁한 약자들이라는 점까지를 감안해 볼 때(사채업의 양성화를 목적으로 제정된 대부업의등록및0금융이용자보호에관한법률 제8조에서 이자율의 제한에 관한 규정을, 제10조에서 불법적 채권추심행위의 금지에 관한 규정을 둔 것도, 이처럼 대부업 이용자들이 특별한 보호를 필요로 하는 경제적 약자임을 감안한 조치라 할 수 있다) 피해자에게 소액의 지연이자를 문제삼아 법적 조치를 거론하면서 무차별적인 전화공세를 하는 식의 채권추심행위는 사회통념상의 허용한도를 벗어나 경제적 약자인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족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 또한 피해자는 소규모 간판업을 경영하는 자로서 업무상 휴대폰 사용이 긴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전화가 그 휴대폰에 집중된 이상 이로 인하여 동인의 간판업 업무가 방해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성이 발생하였다고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진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5. 5. 27. 선고 2004도8447 판결).
Ⅳ. 채권추심과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의 한계
1. 서울고등법원은 신용정보법상 채권추심대행업체가 변제금의 수령이라는 행위를 넘어 채권자를 대리 변제약정을 하거나 채무자 이외의 자와 변제약정 등을 하는 행위는 일체 허용되지 않으며, 비록 채권자의 위임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마찬가지라고 판결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04. 10. 20. 선고 2004나16244 판결).
2. 또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석고를 납품한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던 중 피해자가 화랑을 폐쇄하고 도주하자, 피고인이 야간에 폐쇄된 화랑의 베니어판 문을 미리 준비한 드라이버로 뜯어 내고, 피해자의 물건을 몰래 가지고 나왔다면, 위와 같은 피고인의 강제적 채권추심 내지 이를 목적으로 하는 물품의 취거행위를 형법 제23조 소정의 자구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1984. 12. 26. 선고 84도2582 판결).
3. 형법 제20조에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것은 사회상규가 바로 위법성조각사유의 일반적 기준이 된다는 것을 명문화한 것입니다.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는 가장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위법성조각사유입니다. 자기 또는 타인의 권리를 실행하기 위한 행위는 그것이 사회상규에 벗어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때에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합니다. 피해자에게 치료비를 요구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하거나(대법원 1971. 11. 9. 선고 71도1629 판결), 가해자를 구속시키겠다고 하는 경우에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에 해당한다 (대법원 1977. 6. 7. 선고 77도1107 판결). 그러나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채권자의 채권추심행위가 사회상규를 넘어 지나치게 되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고 형사 처벌되는 경우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Ⅴ. 맺는말
최근 우리 사회에서 채권자 특히 고리대금업자들이 가혹한 대출조건하에 대출해준 후 변제를 받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거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채무자를 괴롭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채권자들의 채권추심과정에서의 각종 불법행위에 대한 체계적인 규제를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에서는 채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가일층 강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위 대법원 판결이 채무자 보호를 위해 고심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 것은 매우 뜻 있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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