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감리계약의 내용과 이행>
가을사랑
Ⅰ. 설계감리계약의 의의 및 법적 성질
설계계약은 설계도서의 완성이라는 건축사가 부담하는 의무를 전제로 도급인인 건축주가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도급계약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건축도급계약과 마찬가지로 설계계약에서는 도급인과 수급인이 있다.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는 용역업무를 건축주가 도급인의 입장에서 건축사에게 맡기는 것이다. 건축사는 수급인의 입장에서 책임지고 약정된 내용대로 설계라는 용역을 제공하는 것이다.
건축사가 제공하는 용역의 내용은 다른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에서 정하는 것과 다르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하여 그 결과물인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는 것이다. 단순히 일만 하면 되는 근로계약과 다르고, 일의 완성이라는 목적이 설정되어 있지 않은 위임계약과 다르다.
감리계약은 설계계약과는 약간 다르다. 감리계약은 도급계약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대법원은 도급계약이 아닌 준위임계약이라고 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도급계약보다는 위임계약에 가까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즉, 감리계약은 감리대상이 된 공사의 완성 여부, 진척 정도와는 독립된 별도의 용역을 제공하는 것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위임계약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감리계약을 위임계약으로 볼 때 수임인인 건축사는 위임인인 건축주로부터 위탁받은 사무를 처리할 의무를 진다. 이 경우 건축사는 위임의 본지(本旨)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도급과 달리 위임에 있어서는 일의 완성이 아니라, 그냥 맡겨진 사무를 처리하면 된다. 사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대충하거나 불성실하게 해서는 안 되고, 위임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다 하면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반드시 일을 완성한 것도 아니고, 위임인의 목적이나 의도에 부합하는 성과가 나지 않아도 일을 맡은 수임인은 자신이 할 도리만 다했으면 법적 책임은 없다.
Ⅱ. 설계감리계약을 체결할 때 유의사항
설계감리계약서에 상세하게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계약의 이행방법도 구체적으로 명기되어 있다. 당사자는 이러한 계약의 효력을 존중해야 한다. 계약의 문언을 잘 읽어 오해하지 않도록 하고, 계약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자신의 의무사항을 철저하게 이행하여야 한다.
건축사에게 설계감리계약은 나침반, 항해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 계약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계약이 종료될 때까지 늘 계약서의 내용을 숙지해야 한다.
건축사는 의뢰인과 설계계약, 감리계약을 체결한다. 의뢰인(Client)은 전문직업인과 거래를 할 때 상당히 긴장하지만 대부분은 전문가를 믿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이나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약정서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할 때 그냥 읽어보지도 않고 사인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나중에 이런 계약서나 약정서의 효력이 종종 다투어지는 것이다. 계약서에 따라 자신의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게 된다. 건축물에 대한 설계를 하고, 설계도서를 작성하여 교부하여야 한다. 이것이 가장 주된 계약상의 의무다.
의뢰인은 이에 대한 대가로 설계비를 지급하여야 한다. 건축사가 고심 끝에 작성한 설계도서를 기초로 건축주는 행정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고, 시공자는 이러한 설계도서에 따라 건축행위를 하게 된다.
시공자는 오직 설계도서에 기재된 내용대로 시공하여야 한다. 설계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면, 설계자에게 설계변경을 요청하고, 행정청으로부터 설계변경허가를 받은 다음 시공을 계속해야 한다.
건축사가 설계도서를 작성하면서 실수를 해서 제대로 공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든가, 구조계산을 잘못해서 건축물의 안전에 이상이 생긴 경우, 설계도서 작성기한을 어긴 경우, 사용승인을 받지 못하게 된 경우 등에는 건축사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져 책임을 추궁 당하게 된다.
감리계약도 마찬가지다. 계약서 기재 내용과 법령의 규정이 종합적으로 적용되어 감리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의 감리를 해야 하는지가 결정된다. 그리고 그러한 계약상의 감리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책임을 지게 된다.
Ⅲ. 설계감리계약의 해제
얼마 전에 어떤 건축사를 만났다. 그는 공장에 대한 설계감리를 맡았는데, 어렵게 공장신축허가를 받았고, 설계도서를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다시 설계변경을 해야 하는데, 설계변경허가가 쉽게 날 것 같지 않고, 건축주는 무조건 받아내라고 난리를 치고 있다고 한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지금 단계에서 손을 떼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내용을 들어보니 토지경계측량을 했을 때, 실제 경계선과 지적도 상의 경계선이 불일치한 것이고, 인접토지소유자가 이미 토지에 대한 시효취득을 한 상태라서 결과적으로 건축허가를 받을 때 잘못했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현재 상태에서 설계감리계약을 해제하고 손을 때고 싶다는 취지였다. 무척 답답한 상황이었다.
건축사도 사람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일단 계약을 딸 욕심에 계약은 했는데, 막상 작업을 하다 보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의뢰인이 법과 규정에 맞지 않는 건축허가나 설계변경을 해달라고 무리하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설계나 감리업무를 수행할 사무소 사정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처음에 예상을 잘못해서 설계도서의 완성이 상당한 기간 지연될 것이 우려되는 경우도 있다. 계약 체결 후 직원이 그만 두거나 건축사 자신이 건강이 나빠져서 제대로 계약을 이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을 모르기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 시간만 보내는 건축사가 있다. 어떻게 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인지 연구를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약의 취소와 해제, 해지 등의 제도에 대해 알아야 한다.
설계계약은 체결할 때 적법하고 공정하여야 하며, 당사자가 진정한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서로 합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효력이 발생하게 된다. 계약 체결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 계약은 취소될 수 있다.
설계계약이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는 아예 무효로 간주된다. 효력이 애당초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법의 정신은 아파트신축을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른바 알박기를 하여 시행사로부터 거액을 뜯어내는 토지매매계약에 있어서 무효로 판정하는데서 나타난다.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 중대한 착오가 있었던 경우에는 사후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그런데 설계계약이 체결된 이후에 이를 건축사가 무효 또는 취소할 수 있는 사유가 있다고 주장하고 그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건축사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설계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가 중요한 법적 사유다.
계약이 체결된 후 당사자 한쪽이 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다른 계약 당사자는 그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계약 체결 후 이행지체 또는 이행불능의 상태가 되면 이를 이유로 계약을 더 이상 존속시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반대 당사자가 일방적인 의사표시로 계약을 파기하는 것이 바로 계약해제제도이다.
설계계약이나 감리계약에 있어서도 이러한 계약의 해제와 해지는 명백하게 인정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 건축사가 해제할 수 있는지 그 요건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한 해제의 효과는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한다.
다만, 여기에서는 건축주와 같은 의뢰인이 설계감리계약을 해제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오직 건축사의 입장에서만 검토한다. 물론 건축주도 당연히 해제사유가 있으면 설계감리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
Ⅳ. 건축사가 일방적으로 해제할 수 있는 사유
설계계약의 경우를 보자. 설계계약을 체결했는데, 건축주가 설계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할 능력이 없어진 때에는 건축사는 즉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일반 표준계약서에는 건축사가 설계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설계계약에서 법정해제권 이외에 별도로 약정해제권을 부여한 것이다. 특별해제권은 건축주가 동의하여 설계계약서가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인정되는 것이다. 건축사가 건축주를 상대로 설계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제하여 효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사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건축주가 건축사의 업무를 방해하거나 그 대가의 지불을 지연시키는 경우다. 건축주가 약정한 보수를 제때에 지급하지 않으면 일정한 기간을 주고 이행을 최고(催告)한 다음 그래도 불이행하면 그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② 건축주가 계약 당시 제시한 설계요구조건을 현저하게 변경하여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명백할 때다. 여기에서는 ‘현저하게 변경’하여야 한다는 매우 추상적인 기준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여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다.
③ 건축주사 건축사의 승낙 없이 계약상의 권리 또는 의무를 양도한 경우다. 설계계약상의 설계도서에 관한 협의권한이나 설계도서사용권 등을 임의로 양도한 경우를 말한다. 또는 보수대금지급의무를 제3자에게 임의로 인수시킨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④ 건축주가 건축사의 업무수행상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지 아니하여 건축사의 업무수행이 곤란하게 된 경우다. 실제로는 이런 경우는 거의 상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⑤ 건축사의 사망 실종 질병 기타 사유로 계약이행이 불가능한 경우다. 기타 사유라 함은 그야말로 계약이행이 불가능하게 만든 제반 사유를 말한다. 어떠한 경우이든 계약이행이 불가능하게 된 이상 건축사는 설계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다만, 그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설계계약은 도급계약에 해당하므로 민법상 특별한 해제사유의 적용을 받게 된다. 즉 수급인인 건축사가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급인인 건축주는 손해를 배상하고 설계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이는 민법 673조의 규정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경우 건축주가 계약을 해제하는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러나 일을 완성한 때에는 아직 인도를 하지 않았더라도 해제는 인정되지 않는다.
도급에서 수급인이 부담하는 목적물의 인도의무는 목적물을 완성하여야 할 의무에 종속된 것에 지나지 않고, 또 이 경우에는 도급인에게 해제를 인정할 실익도 없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의 범위는 이미 지출한 비용과 일을 완성하였더라면 얻었을 이익이 포함된다. 도급인이 파산한 때에도 수급인에게는 해제권이 부여된다.
Ⅴ. 설계계약해제를 하는 방법
건축사가 어떠한 해제사유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여 계약해제를 하려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게 설명하면 일단 자신이 해제하려고하는 이유를 쓰고, 그에 대한 증거자료를 첨부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설계계약을 해제할 것이니 그에 대한 정리를 어떤 방법으로 하자는 취지를 써서 내용증명방식으로 건축주 등 상대방에게 우편으로 송달하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계약해제는 건축주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설계계약의 체결이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해서는 불가능하고, 반드시 건축주와 건축사 두 사람의 합치된 의사표시에 의해 성립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해제에는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없다. 상대방의 동의(同意)를 받아서 하는 설계계약의 해제는 물론 가능하나 이것은 합의해제라고 하는 이른바 해제계약에 의해 하는 것이다.
계약 또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당사자의 일방이나 쌍방이 해지 또는 해제의 권리가 있는 때에는 그 해지 또는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한다. 이러한 의사표시는 철회하지 못한다.
계약해제 사유가 발생하였더라도 이러한 해제권을 행사할 것인지 여부는 해제권자의 자유의사에 맡긴다. 따라서 채권자는 계약을 해제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부담하면서 채무자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해제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써 한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도달한 때로부터 그 효력이 생긴다. 해제의 의사표시에는 조건이나 기한을 붙이지 못한다.
Ⅵ. 계약해제의 효과
그러면 계약해제의 효과는 무엇인가? 계약을 해제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그 상대방에 대하여 원상회복의의무가 있다. 당사자 서로의 원상회복의무에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며 계약의 해제는 손해배상의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계약의 해제는 계약관계를 해소하여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로 복귀시키는 데 있다. 따라서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그 효력을 상실하고 그에 따라 채권채무도 소멸하는 결과, 아직 이행하지 않은 채무는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되고, 이미 이행한 채무는 계약체결전의 상태로 회복시켜야 한다.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은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 당사자는 계약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며, 이행하지 않은 채무는 이행할 필요가 없고, 이미 이행된 급부는 서로 원상회복하여야 한다.
Ⅶ. 맺는 말
살다 보면 참 골치 아픈 일을 많이 당하게 된다. 특히 건축사 사무실을 운영하다 보면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직원이 속을 썩이거나, 의뢰인이 경우가 없거나, 행정청에서 공무원들이 너무 엄격하게 법집행을 하여 힘이 들 때가 많다.
그래도 참고 견뎌야 한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법은 매우 귀찮은 존재이지만, 막상 문제가 생기면 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건축사로서의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힘이 들어도 법에 대한 지식을 쌓고 평소에 업무를 수행할 때 꼼꼼히 따져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그때 필요한 자료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것이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까 싶다.
'건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리계약은 어떻게 이행되어야 하는가 (0) | 2016.01.26 |
---|---|
설계자와 감리자의 책임 (0) | 2016.01.25 |
대지를 조성하기 위한 옹벽 (0) | 2016.01.21 |
건축사가 징계처분을 받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0) | 2016.01.18 |
건축사가 징계처분을 받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 (0) | 2016.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