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진 운명 4-15
정 사장은 파김치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공황상태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검찰에 의해서 구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변호사도 특별한 대책을 세워주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서는 상대방과 말을 맞추지 못하도록 일체 연락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동해주식회사 사장도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고, 뇌물 받았다는 혐의를 받는 시청 공무원에 대한 조사도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회사 비자금을 5억 원 만들어 사용했다는 부분도 검찰에서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구속이 무서워서 도망갈 수도 없다.
도주하면 곧 바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될 위험이 있다. 증거를 인멸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주 외국으로 피해 있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러면 회사는 부도난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사건 수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밤에 잠도 못자고, 혼자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모든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자신은 구속되어 징역을 몇 년 살고, 회사는 부도나고, 신문에 나면 명예는 추락한다. 앞으로 관청 일은 더 이상 볼 수도 없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이 너무 허망하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너무 억울했다. 고생해서 이제 잘 살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 놀지도 못하고, 악착같이 일을 했는데, 너무 억울했다. 이럴 때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심지어 부인과도 자꾸 말하기 싫었다. 걱정해봤자 부인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변호사도 돈을 많이 주고 선임했지만, 별로 도움도 되지 않고 있다.
사랑의 모진 운명 4-16
변호사는 남의 일이기 때문에 정 사장처럼 크게 걱정도 하지 않는다. 먼저 정 사장에게 전화를 해오는 일도 없다. 꼭 정 사장이 먼저 전화하고 찾아가야 그제서야 비로소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세상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외로웠다 그렇다고 형제들에게 말을 해봤자, 창피하기만 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의 바깥 생활, 사업, 대외관계는 언제나 이렇다.
모든 것이 자신의 어깨에 지고 있는 짐이다. 자기만의 삶의 지게에 올려져있는 무거움이다. 점점 공황상태가 되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자신감을 잃게 된다.
우울증세도 나타날 것이고, 대인기피증세도 나타날 것이다. 잘못하면 자살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TV를 켰다. 그리고 술을 찾았다. 그동안 집에서는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하는 수 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지금의 공황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런 것밖에 없었다. 자신의 육체를 마비시키고, 정신을 둔화시키는 것이 유일했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약간 몽롱해졌다. TV에서는 어떤 현직 검사가 투신자살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검찰의 수사를 받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현직 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중압감과 수치심, 억울함 때문에 투신해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정 사장은 왜 저런 자살사건이 일어나는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전에는 뉴스에 피의자가 자살했다고 해도 남의 일이었기 때문에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대기업 회장도 자살하고, 도지사도 자살하고, 공무원도 자살하고, 경찰관도 자살했다.
사랑의 모진 운명 4-17
그런 뉴TM에 접하면서 정 사장은 ‘왜 저렇게 약해질까? 조사 받고 징역 살면 되지, 왜 죽을까? 죽으면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고?“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가 갔다. '오죽 했으면 죽고 싶었을까? 검찰 수사가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리고 사건 관계인들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 때문에 견딜 수 없었을 거야?'
정 사장은 TV 채널을 돌렸다. 개그 프로를 재방송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개르 프로를 자주 보았다. 지금은 개그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다 저런 것을 보고 웃고 있는 방청객들도 한심해 보였다.
‘세상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데, 저런 말장난이나 하고들 있고, 그걸 보러 녹화현장까지 앉아 있을까?’ 채널을 계속 돌려도 모두 한심한 프로들뿐이었다. 실화라고 사건에 관한 프로도 듣기 싫었다. TV를 껐다.
라디오 방송을 켰다. 구성진 노래가 들려왔다.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노래는 정 사장 가슴 속에 깊이 박히고 있었다. 슬펐다. 아팠다. 노래 제목은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성경을 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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