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보병 제1사단 검찰관으로 근무하다

 

 

 

훈련을 받고 있을 때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했다. 전국적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1979년 12월 4일 서울 강남구 잠원동 64-4 대림아파트 8동 807호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부모님은 같은 아파트 7동 702호로 이사를 했다. 7동과 8동은 붙어 있었다. 그래서 왕래가 쉬웠다. 처음에는 파주 용주골까지 몇 달 동안 출퇴근을 했다. 버스를 타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일이었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서울 나올 때마다 검문을 받아야 했다.

 

1979년 12월 육군 보병 제1사단 법무참모실 소속 검찰관으로 발령이 났다. 법무참모는 군법무관시험 2기인 박성훈 소령이었고, 선임하사는 오기만 상사였다.

 

부대 앞 하숙집에서 생활했다. 하숙집은 아주 오래된 집이었다. 옛날 대학 시절 하숙생활을 해보고 다시 또 오랜만에 하숙집 밥을 먹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여러 가지가 판이하게 달랐다. 자유로웠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좁은 방에서 침대도 없이 그냥 이불만 펴놓고 잠을 자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처리해야 할 사건은 많지 않았다. 주로 군무이탈사건과 폭행사건, 교통사고 등이었다. 전방 사단에서는 사건 사고가 그렇게 많지 않다. 군기가 세기 때문에 사고가 덜 난다. 군에서는 기강이 해이될 때 안전사고 등이 많이 발생한다.

 

군에 갓 들어온 신병들에 대한 군법교육을 하러 돌아다니면서 군생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사병에 대한 관리는 잘 해야 한다. 아주 인간적인 배려를 하지 않으면, 감수성 강한 어린 나이에 사고를 칠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법무관이 해야 할 일은 사건 처리 뿐만 아니라 장병들에 대한 군법교육이다. 교육은 강사가 직접 부대 단위로 찾아다니면서 한다. 법무참모 짚차를 타고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군법교육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매주 신병교육대에서 신병들을 상대로 군대에서 지켜야 할 군형법 등을 강의했다. 군에 갓 입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신병들에게는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군법교육을 다니면서 만나는 일선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심지어 연대장들은 고시 붙고 들어온 법무관인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많은 관심도 보여주었다. 나는 이때 그들이 군에 들어와 얼마나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지, 전방에서 애환을 겪으며 고생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운전병을 데리고 중위 계급장을 단 내가 집차를 타고 이곳 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군대는 계급사회, 명령복종사회였기 때문에 장교인 나에게 사병인 운전병이나 법무참모실에서 근무하는 사병들도 잘 대해주었다. 법무관인 내가 그들을 특별히 귀찮게 하는 일도 없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커다란 사무실에 검찰관 책상이 하나 따로 있고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선임하사 책상, 사병 3명의 책상이 옆에 나란히 있다. 커다란 난로가 가운데 있다. 그곳에서 함께 생활하며 군대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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