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의정부 2군수지원사령부에서 근무하다
군에 들어가서도 느낀 점은 다른 장교나 사병들이 법무관에 대해서는 달리 바라본다는 것이다. 군종장교 못지 않게 법무장교에게는 무언가 높은 도덕성과 수준을 기대하고 있었다. 법을 전공하고 고시를 붙었다는 사실 자체에서 남과 다른 생활을 하고 모범적으로, 법대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선입관을 가지고 법무장교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당시 군대재판은 사단이나 군단 단위로 했다. 1사단 재판을 할 때는 인근 사단 법무관들이 지원을 나왔다. 재판부는 합의부로 구성되었다. 재판장은 일반 장교가 맡고, 재판관 한 사람은 법무관이 담당했다. 검찰관과 국선변호인은 다른 법무관이 맡았다. 한번 재판에 최하 법무관 3명이 필요했다. 같은 군단 소속 다른 사단에서 지원을 나오게 된다.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재판을 하게 되므로 법무관들은 각 사단을 돌아가면서 모이게 된다. 다른 사단을 방문해서 새로운 분위기도 맛보고, 법무관들이 모여 대화도 나누고 친목을 도모한다. 그때 가깝게 지내던 법무관들은 그 후 제대해서 법조계에서 일하면서 두고두고 친하게 지냈다.
1사단에서 근무하면서 갑자기 피아노 배울 생각을 했다. 용주골에 있는 피아노학원에서 바이엘부터 렛슨을 받기로 했다. 퇴근하고 저녁 7시부터 1시간씩 렛슨을 받았다. 한 2개월 렛슨을 받다가 5월말경 다른 부대로 파견 가는 바람에 중단했다. 그때 여건이 허락하여 좀 더 레슨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5월 말 광주 전투교육사령부로 발령 받아, 그해 12월까지 근무를 했다. 광주에서는 시내에 있는 군부대 숙소에서 연수원 동기생인 서태경 중위와 같은 방에서 생활했다. 1980년 12월 3일 범종(汎鍾)이 태어났다. 1981년 4월 25일 출생신고를 했다.
후방 부대 가서 몇 달간 혼자 생활하다가 의정부 2군수지원사령부로 발령을 받았다. 조상흠 법무참모님을 모시고 검찰관 근무를 하였다. 그러다가 법무참모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서 내가 대신 법무참모대리 역할을 했다.
검찰관 1명이 보충되었다. 김태현 중위가 검찰관으로 왔다. 나는 중위 계급으로 법무참모대리가 되었다. 군수지원사령부는 보병 사단과 다르다. 참모들의 계급이 대령이다.
데리고 있던 중사가 군법회의에서 받아 놓았던 벌금 13만 원을 경리참모부로 입금시키지 않고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었다. 나는 즉시 벌금을 전액 변상조치하도록 하고, 중사를 전역시키기로 했다. 문제가 된 중사를 전역시키는 선에서 사고를 매듭짓기로 했다.
물론 중사의 행위는 법에 저촉되는 것으로서 나쁘다. 그러나 즉시 변상조치를 했고, 일시적으로 유용한 후 나중에 전액 입금을 시킨 정상이 있어 형사입건이나 징계조치를 하지 않고 전역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법무참모 조치에 대해 다른 참모들도 모두 이해하고 그렇게 넘어갔는데, 내가 떠난 후에 이 문제가 불거져 골치 아픈 상황이 되었다.
내가 2군수지원사령부를 떠난 후에 새로 온 김문수 법무참모가 중사에 대한 전역지원서를 철회했다. 그 중사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근무를 잘 하겠다고 사정을 하니 마지못해 철회하는 것을 용인했다. 그런데 중사가 술에 취해 6군단 소속 헌병을 폭행했다. 6군단 헌병대에서는 중사의 과거 문제를 거론했다.
중사는 6군단에서 구속되었고, 나와 후임 법무참모는 지휘감독 소홀의 책임을 물어 징계를 당할 위기에 처했다. 나는 그 당시 상황을 3군 법무참모 전창영 대령님에게 설명했다. 그랬더니 내가 취한 조치는 크게 문제가 안 되는 곳으로 불문에 붙이기로 했다. 조직에서의 지휘감독책임이 얼마나 무서운지 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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