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김을권 사단장님을 모시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점심에는 사단장 공관에서 사단장님을 모시고 식사를 함께 하였다. 정식 참모가 되니 사단장님과 직접 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방 사단 법무참모로 혼자 관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겨울은 고독하고 외로웠다. 당시 내 일기장에는 그런 모습이 눈에 띈다. 1981년 12월 31일 내가 써 놓은 일기장이다.

 

'저녁을 때워야겠는데 밖은 쌀쌀하고 몸은 노곤하여 나가기가 귀찮았다. 혼자 관사에서 지내는 생활도 지겹게 느껴진다. 대화 상대방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누워 있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나 법원리로 갔다. 썰렁한 버스 안의 사람들의 모습은 을씨년스럽다. 머리가 짧아 사복을 입고 다녀도 모두 군인 신분임을 알아본다.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어두운 들판이 외로움을 더해 준다. 한 해를 보내는 순간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손아귀에 잡혀 있는 듯 떠나질 못한다. 법원리에서 내려 잠시 걸어 보았다. 꼭 2년 전의 일이다. 법원리에서 방황하던 그 시절, 모든 것이 꿈 속에서 익었던 것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구룡반점 중국음식점에서 간단히 삼선간짜장으로 요기를 때웠다. 다른 식사는 별로 생각이 없었다. TV에서는 가수들의 노래가 연말을 맞아 송년특집으로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무엇엔가 마음을 확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천천히 좁은 동네를 걸어 보았다. 붉은 유흥가의 불빛이 처량하게 비춰주고 있었다. 무엇에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듯. 세상은 그렇게 밝고 아름답게만 보여지는 것은 분명 아닌듯 싶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시골길은 너무 자연적이었다. 자연의 모습 그대로 보여준다. 항상 불빛과 더불어 살아왔던 우리는 불이 없는 어두움 속에서 두려움마저 느껴야 되는가 보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다시 또 관사로 들어와 AFKN News를 듣는다. 카셋트마저 꺼버리면 고요 속에 견디기가 힘들다. 연말을 잊어버린 듯하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1982년 1월 19일 서초구 잠원동 대림아파트 8동 807호로 이사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전세를 살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1월 21일 목요일 오전 부사단장 김진영 준장님의 법무참모실 순시가 있었다. 나는 법무참모로서 업무보고를 했다. 장군은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검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자만하거나 남용하지 말 것이며, 사법권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사단에서 근무할 때 군종참모로 정려성 목사님이 있었다. 호남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소령이었다. 시집도 여러 권 출간했고, 제대 후에는 서울세진교회 담임목사를 지냈다. 김을권 사단장님도 독실한 크리스찬으로서 예편한 다음 육사동문신우회 명예회장을 지내고 목사가 되었다.

 

그 후 나는 법무참모로서 1사단 예하 부대를 돌아다니면서 군법교육을 실시하고, 군검찰권과 군사법권을 행사했다. 사단장의 참모 역할을 수행했다. 법무참모부를 지휘 감독하고 헌병대장과 업무협조를 했다. 보안대장과도 업무협조를 했다. 사단장님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았다.

 

대학교 3년 후배인 배진수 일병이 법무참모실에 배치되었다. 그는 나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나는 아주 열심히 몸과 마음을 바쳐 군생활을 했다. 그렇게 만 3년이 흘러갔다. 나는 1982년 8월 31일 전역하기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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