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⑮

하얏트 호텔은 남산 중턱에 있다. 꽤 오래된 호텔이다. 그런 호텔이 남산에 어떻게 들어섰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서울의 개발초기에 정부에서 환경이나 도심 미관 같은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고 허가를 내준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지금도 하얏트호텔처럼 전망이 뛰어난 호텔은 드물다. 특히 서울 시내에서는 그렇다.

 

정현은 택시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가서 1층에 있는 양식당으로 갔다. 윤석은 이미 와서 창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는 서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파리나 보스톤 같은 도시보다 훨씬 더 운치가 있고 멋이 있었다.

 

“요새 세상이 너무 시끄럽지 않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통 모르겠어. 북핵문제도 그렇고, 경제가 너무 불황이라 걱정이 돼. 그나저나 잘 지내고 있었나?”

“응. 나는 사무실에서 일만 하고 있으니, 사실 정치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몰라. 워낙 일이 바쁘니까. 내가 하는 일은 수사나 하고 사건처리를 하는 게 전부야.”

 

두 사람은 최근의 정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떤 도지사가 여비서를 간음하여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가 기각되었고,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1심에서 무죄판결이 선고되었다는 것이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윤석은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궁금한 게 많았다. 정현이 이것 저것을 설명해주었다.

 

“지난 번 전화로 유미를 다시 만나고 있다면서? 유미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아니. 만나는 게 아니고, 지금 유미 상황이 안 좋아. 그래서 걱정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네가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

“책임을 지라고 그러는 건 아냐. 단지 유미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으니까 걱정을 하는 거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니까 답답한 거야.”

“처음부터 힘이 들더라도 너는 유미와 결혼했어야 해.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게 꼬이고 어렵게 된 것이지. 아무튼 잘 해줘. 불쌍하잖아? 그리고 유미처럼 착한 사람도 없지.”

 

유미 이야기가 나오자 정현은 갑자기 마음이 울적해졌다. 마침 비도 오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셨다. 취기가 올라오자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었다. 커다란 유리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마치 공룡의 눈물 같았다. 갑자기 유미가 보고 싶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유미를 만나 무언가 하소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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