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9)
권시장이나 그 부인은 뇌물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였지만, 뇌물을 주었다는 공여자측에서 충분한 신빙성 있는 진술을 하였고, 검찰에서는 이에 부합하는 상당한 양의 정황증거를 확보했다. 법원에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하였고, 권시장은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선거로 뽑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는 뇌물죄로 구속되어도 국회의원직이나 시장 군수직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대법원까지 가서 판결이 확정되어야 그때 비로소 공직이 박탈된다.
그러니까 권시장은 구속되었어도 교도소 안에서 그냥 시장으로서 결재를 하는 것이다. 시청 직원들은 교도소까지 면회를 와서 시장에게 보고를 하고 결재를 받아가는 것이다.
참 이상한 풍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달랐다. 변사또가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춘향에게 숙청을 들라고 강요하다가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출현해서 감방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사또에게 행정결재를 받으러 다닌다면, 이몽룡이 가만 두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자유민주사회에서는 뇌물죄로 재판받는 시장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감방에 들어가 비참하게 된 시장에게 시청의 국장들이 결재를 받으러 가야 한다.
면회 가서도 깍듯이 “시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빨리 무죄를 받고 나오세요. 모든 시민들이 시장님의 억울함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 결재는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시민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이런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이 21세기의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런데 시장과 같은 고위공직자가 수사 대상이 되면 순식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진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으로 예우하거나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 속으로 경멸하며 막 대한다.
사건 취재를 하는 태도도 매우 다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오직 형사소송법에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원칙이 된다. 포토라인에 서면 세상 사람들은 이미 그 공직자는 끝났다라는 선입관을 가지게 된다.
그토록 사회적으로 저명인사였고, 겉으로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이었지만, 일단 검찰 수사대상이 되고 구속이 되면 그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 된다. 깊은 심연의 계곡 아래로 추락한다. 많은 공직자들이 포토라인에 서서 검사실로 들어가기 전에는 큰소리를 친다.
“검찰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저는 일원 한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만일 받았다면 할복을 하겠습니다.” “모든 진실은 검찰수사로 명확하게 밝혀질 것입니다.”
하지만 열시간이 넘는 검찰조사를 마치고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치소로 수감되는 검은 색 검찰승용차를 타게 되는 순간의 표정은 그야말로 초라하며 비참하다. 그리고 묵비권을 행사한다.
고위공직자는 그동안 세상이 얼마나 무섭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공직자 자신이 일반인에게 무서움을 주는 가해자의 조직 속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반대 입장에서 무서움을 당하는 피해자 내지 약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세상의 무서움’을 전혀 느낄 수 있는 환경 내지 상황에 처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무섭다는 것은 예를 들면 군대에 사병으로 입소해보면 대번 느낀다. 어느 날 갑자기 군대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가슴에 번호만 달고 내무반 침상에 일렬로 누워있으면,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개인은 얼마나 초라하고 무기력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된다.
권시장도 마찬가지다. 건설회사 사장으로 있을 때, 시장 선거운동을 하러 다닐 때, 그리고 시장으로서 폼을 잡고 있을 때에는 세상은 별 거 아니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 야망을 가져라.“ ”용기를 가지고 자신감을 가져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라.“ 이런 식의 생각을 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늘 떠들고 다녔다.
인간세계는 무섭다. 약육강식의 세상이고, 한번 추락하면 동물 취급을 받는다. 고위공직자는 그래도 한 동안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수갑을 차고 구치소에 들어가 신체검사를 받고 수감번호를 부여받고 죄수복을 입고 감방에 들어가도 자신이 아직도 시장이기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착각한다.
교도관 조차도 현직 시장에게 신경을 써서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인심을 그렇지 않다. 더 무시하고 더 경멸한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던지는 돌은 그만큰 더 아프다.
그 돌은 몸에 맞을 뿐 아니라, 심장속까지 던져진다. 동물로 전락하면서 추악한 존재에게 던져지는 세속적인 인간의 차가운 냉소의 시선과 조롱의 언사는 그야말로 대상자에게 인격적 살인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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