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1)

 

명훈 아빠가 TV 채널을 돌리니 개그 프로를 하고 있었다. 전에는 제일 많이 본 프로가 개그였다. 개그 프로를 보면 정말 재미 있고, 그들의 순간적인 재치와 은유가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어떻게 저렇게 재미있는 개그를 만들 수 있을까 감탄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저런 것을 보고 무엇이 재미 있다고 웃고 있는 것일까? 너무 유치하다.’ 개그를 하는 사람들은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개그를 보려고 일부러 추운 날씨에 먼곳까지 가서 개그 프로의 방청객으로 앉아 수시로 재미 있어 못견디겠다는 표정으로 계속 웃고 있는 사람들까지 이상해 보였다.

 

‘세상이 얼마나 살기 어려운데, 저런 말장난이나 하고들 있을까? 그걸 보러 녹화현장까지 앉아 있을까?’

 

명훈 아빠는 화까지 날 정도였다. 다른 채널을 돌리니 프로 골프 시합을 중계방송하고 있었다. 속이 상했다. 지금 이런 사건만 아니었으면, 나도 경치 좋은 곳에 가서 ‘Nice Shot!'을 날리고, 끝나면 사우나를 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젊은 파트너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까지 갈 수 있을 텐데, 너무 억울했다.

 

명훈 아빠는 남다른 운동신경이 있어서 그런지 골프 렛슨을 많이 받지 않았어도 오래 전부터 싱글이었다. 그래서 필드에 나가면 눈에 띄는 황태자였다. 게다가 돈을 잘 쓰고 인심이 좋고, 팁을 잘 주니까 캐디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명훈 아빠를 맡으려고 애썼다. 골프장 매너도 좋아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신사였다.

 

골프채는 매년 바꿨다. 골프채가 좋아야 핸디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골프고 나발이고, 모든 것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채널을 돌리니, 격투기를 하고 있었다. 흑인과 백인이 서로 경기를 하는데, 백인이 흑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흑인은 백인을 넘겨뜨리고, 그 위에 올라탄 채 계속해서 백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꽃고, 팔꿈치로 내리찍었다.

 

백인은 곧 죽을 것처럼 보였다. 얼굴에서 피도 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코뼈가 부러지지 않고, 이빨이 부러지지 않고, 뇌진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관중들은 열광하고 있었다.

 

백인이 그 체급의 참피온인데, 도전자에게 신나게 얻어터지니까 모두들 흥분해 있었다. 명훈 아빠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사건은 그렇고, 일단 지금 저렇게 힘이 있는 사람이 무자비하게 때리고 폭행을 가하고, 상해를 가하고 있으니까 스트레스가 확 풀렸다.

 

명훈 아빠는 옛날 로마시대에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창과 칼로 서로 싸우고 죽어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검투사들은 노예 출신이거나 죄수 신분이었다. 그들은 검투사로 자원한 것은 아니었다.

 

강제명령에 의해 동원된 투사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정한 게임의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상대를 죽여야 자신이 사는 전투였다. ‘살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비극적 상황이었다.

 

현대판 격투기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살기 위해, 상대를 때려눕혀야 하는’ 현실은 로마시대의 검투와 똑 같다. 상대를 KO시켜야, 참피언이 된다. 그래야 자신이 사는 것이다.

 

물론 KO를 당한 선수는 사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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