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93)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맹 사장은 영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분간 영미를 회사 밖에서 만나지 않았다. 영미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회사에서 업무상 관계로서만 상대했다.
또한 김현식 과장의 업무에 대해서도 최 상무를 시켜 은밀하게 제대로 하고 있는지, 경리상의 부정은 없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영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비가 오던 날 사장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은 너무 머리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어리석게 남의 보증을 서준 것이 잘못되어 전세보증금에 압류가 들어와서 모두 날아가게 생겼다.
아버지는 교회에서 만난 사람이 사업하고 있는데, 보증을 서달라고 부탁을 하니까. 설마 같은 교회 다니는 교인이 사기를 치랴 싶어 보증을 서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 교인은 처음부터 사기를 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회사를 살려보려고 하다가 아버지에게 피해를 준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남의 보증을 서주었다가 그 사람이 부도가 나자 아버지 전세금만 손해를 보게 된 것이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영미는 사장의 전화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만일 전화를 받으면 사장은 당연히 영미의 오피스텔로 와서 영미의 상태가 어떻게 되었든 그짓을 강요할 것이 뻔했다.
그런 상태에서 속이 상해 혼자 술을 마시고 12시 조금 넘어서 오피스텔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곳에서 김현식 과장이 영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이 늦은 시간에 왠일이세요?”
“영미 씨! 할 말이 있어요. 제발 사장과 만나지 말고, 내게로 돌아와요.”
“과장님! 저희 아버님이 보증을 잘못 서서 전세금이 모두 날라가게 되었대요. 지금 저는 남자가 중요한 게 아니고, 생활이 절실한 거예요. 부모님을 제가 책임져야하는 상황이예요. 그냥 돌아가세요.”
“전세금이 얼만데요? 내가 빌려줄게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돈도 필요 없고, 그냥 돌아가세요. 우린 이미 끝난 거잖아요?”
“영미 씨! 사장과 헤어지지 않으면 내가 사장에게 이야기해서 손을 떼게 만들 거예요. 아니면 사장 부인에게 말을 할 거예요.”
“도대체 왜 그래요?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요.”
“정말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영미는 김 과장이 불쌍해 보였다. 아무 능력도 없는 초라한 남자가 골리앗 같은 사장을 상대로 승산이 전혀 없는 싸움을 벌이려고 하다니! 그리고 지금 영미 아버지 문제로 골치 아픈데, 무슨 사랑 이야기를 할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돌아가는 김 과장의 어깨에 손을 얹고 도닥거려주었다. 술도 많이 취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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