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
정현의 사무실에 갑자기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축하합니다. 총장으로 지명이 되었는데, 소감을 말씀해 주시지요?”
“처음부터 예상하셨던 겁니까?”
“고등검사장님께서 되리라고는 모두들 기대하지 않았었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검찰을 이끌어가실 건가요?”
물론 정현은 최근에 한 달전부터 자신의 이름이 총장 후보로 거명되고 있고, 여러 가지 정세로 보아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싶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직원들 모르게 혼자서 컴퓨터로 정리해 놓고 있었다.
총장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우선 가장 큰 문제가 정치적 사건 수사에 있어서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수사를 하는 검찰을 만들고 싶었다. 그동안 몇 십년 동안 검찰은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아예 처음부터 그런 것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조직이었다.
그래서 정치적인 사건 수사만 하면 언제나 난리가 났다. 여당 인사가 수사대상이 되면, 야당에서는 처음부터 축소수사, 봐주기수사, 꼬리 자르기, 면죄부 수사 등의 비판과 비난이 들끓었다.
야당 인사가 조사를 받게 되면, 언제나 정치적 탄압, 표적수사, 부당한 인신구속, 별건수사 등의 정치적 저항 내지 대응이 뒤따랐다.
그래서 검찰개혁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부터 끊임없는 이슈가 되었고, 그때마다 법과 제도를 바꾸기도 하고,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검찰은 여전히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하고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심지어 검찰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까지 설치하여 검찰에서 과거에 처리한 사건 중에서 검찰이 잘못한 것을 찾아내서 결론을 뒤집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정현은 다짐했다. 자신이 총장이 되면 다른 것은 다 제쳐놓더라도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정현은 기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일체 하지 않았다.
“아직 공식적으로 통보를 받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런 말로 매듭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뻤다.
그동안 30년 동안 검사생활을 하면서 고생했던 보람이 이제 꽃을 핀 것이다. 검찰조직을 지휘해서 자신의 소신대로 수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가문의 영광이다. 하지만 표정 관리를 해야했다. 매우 신중하게, 무거운 사명과 책임을 어깨에 올려놓은 것처럼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걸음도 일부러 천천히 옮겨놓았다. 너무 천천히 걸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리에 쥐가 났거나 하지부정맥증세가 도졌나 하고 걱정을 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트를 탄 다음부터는 너무 빨리 걸어 주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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