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29)
현옥이 대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의 소개로 그 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만났다. 양조장은 아버지가 그 시의 시장까지 지냈고, 그 지역에서는 돈이 많은 유지로 소문이 나있었다.
이름이 양조장이라서 마치 술을 만드는 작업장으로 오해할 소지도 있었지만, 성이 양씨고, 이름이 조장이라서 그렇지, 조장은 술을 한 모금도 못했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얼굴이 완전히 빨개지고, 고통스러워했다.
조장은 그 지역에서 가장 명문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성적으로는 당연히 서울대학교에 갔어야 하는데, 아버지는 조장을 서울로 보내지 않고, 그 지역에서 최고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도록 했다.
그리고 대학교에서도 공부보다는 학생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나중에 졸업한 후에도 그 지역에서 계속 남아 일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되기를 바랬다.
아버지 지론은 지방자치가 본격화되고, 이제 대한민국도 전 국토가 균형있는 발전을 하려면, 서울이나 수도권에 사람들이 몰려서는 안 되고, 각 지역의 사람들이 그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까지는 지방 출신들이 공부 잘하면 모두 서울이나 부산으로 몰려가고, 그곳에서 직장생활이나 의사 또는 변호사로 일하다가 출세하고 돈을 벌고 성공하면 다시 출신 고향으로 돌아와서 낙하산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을 하거나 시장 군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면서 그래서는 절대로 나라가 발전하지 못한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기회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떠들었다.
조장의 아버지가 원래 그 도시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모든 교육을 마치고, 평생을 그 도시에서 활동을 해서 성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전직 시장이며 회사의 회장인 조장의 아버지에게 토를 달지 못했다.
만일 조금이라도 반대의견을 냈다가는 그 날로 아버지의 눈에 나게 되고,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고,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는 충격으로 며칠 간 앓아누웠다.
아버지는 건강이 회복된 다음에는 반대의견을 감히 건방지게 낸 사람을 지역에서 매장시키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최소한 한 달 동안 매장사업에 몰두했다.
이러한 반대의견제시자매장사업에 소요되는 예산은 아무리 큰 돈이 들어가도 아버지가 혼자 부담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런 사람을 그대로 두면 지역은 망한다. 그리고 논둑에 작은 구멍이 생겼으면, 그 즉시 호미로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방치했다가는 나중에 가래로 막아도 못막는다. 지역의 원로에 대해 반항하고, 건방진 악의 뿌리는 초기에 완전히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버지도 점점 나이가 먹어가면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반대론자에게 아무 것도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조장이 대학교를 선택할 무렵에만 해도 아버지의 기세등등함으로 그 지역에서 하늘을 찌르고, 바다를 누를 정도의 막강한 힘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장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명령하는 대로 지방대학교에 들어갔고, 1학년 때부터 학생회 활동에 전념을 하여, 마침내 4학년 때에는 총학생회장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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