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51)
지수는 음악대학에 들어가서 1학년 말에 같은 음대 졸업반 선배를 만나 데이트를 했다. 성악을 전공하는 황생선은 지수를 무척 사랑했다.
생선과 지수는 거의 매일 만났다. 별로 하는 일이 없어도 매일 만나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생선은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지수는 생선을 만나 음악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두 사람은 깊은 관계에 들어갔으나, 이상하게 생선은 별로 성관계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관계는 했지만, 생선은 체력도 약했고, 어떤 면에서는 여성스러운 면이 많았다. 지수도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고 생선을 좋아했다. 생선이 대학을 졸업하고 일년 동안 놀고 있을 때도 지수는 계속해서 만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일년 정도 사랑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생선은 지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수는 미칠 것 같았다. 여기 저기 백방으로 수소문해보았지만 생선의 근황을 알 수는 없었다.
생선은 원래 부산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다가 대학교에 들어와서 학교 앞에서 원룸을 얻어 혼자 생활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한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머물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돈이 없어서 지수를 만날 때도 모든 데이트 비용을 지수가 냈다. 지수로서 가장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둘이서 모텔을 갈 때도 모텔 비용을 지수가 내야하는 것이었다. ]
체격이 크고 인물이 훤한 생선은 가만 있고, 체격이 아담한 여학생이 모텔비가 얼마냐고 묻고 현금으로 계산을 하니, 모텔 주인은 지수가 남자를 밝혀서 자기 돈을 써가면서 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것이구나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텔 주인에게. ‘지금 이 사람은 취업준비중에 있어서 그래요.’라고 설명하기도 그랬다.
생선은 뻔뻔하게 빨리 모텔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프로트 주변을 예의 살펴보고 그곳에 있는 생수나 커피를 챙겨서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었다. 그래도 지수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선과 같이 있는 것이 좋아서 모든 것을 감수했다. 그러다가 생선은 갑자기 연락을 끊고 한 달 후에 미국에서 편지를 보냈다.
“사랑하는 지수에게! 그동안 같이 지낸 시간, 너무 행복했어. 우리 사랑을 평생 잊지 않을 거야. 갑자기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따라왔어. 미안해. 사전에 연락을 하지 못한 거. 이해해 줘.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아.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있을 거야.”
발신인도 황생선이 아니라, Mr. Fish Yellow로 영어로 쓰여있었고, 발신지 주소는 번지는 없고 Street까지만 적혀 있었다. 하늘 나라에서 온 편지 같았다.
지수는 울음도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몰랐다. 그렇다고 자신이 생선에게 이용 당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다만, 몸속에 들어박힌 그 놈의 정 때문에 괴로웠다. 그의 노랫소리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생선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칸초네로 알려진 오 솔레 미오(O Sole Mio)를 즐겨불렀다. <Che bella cosa 'na jurnata 'e sole, n'aria serena doppo na tempesta! Pe' ll'aria fresca pare già na festa...>
정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1년 동안 만나 모든 것을 공유했던 두 사람 사이에 남겨진 것은 정이었다. 지수는 그 정을 떼어내기 위해 1년을 고생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가슴도 많이 아팠다. 잊을 만하면, 또 ‘오 솔레 미오’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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