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86)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6월에 있었다. 때문에 선거운동은 4월과 5월에 집중된다. 우리나라 봄의 절정은 언제나 4월과 5월이다. 3월은 절기상 봄에는 해당되지만, 날씨가 완전히 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쌀쌀할 때가 많다. 그러나 4월이 되면 전혀 다르다.

 

꽃이 제대로 피고, 나뭇잎이 연한 녹색을 띤다. 두터운 옷을 벗어던지고 확실하게 봄옷으로 갈아입는다. 1932년 이은상의 시조를 가사로 해서 작곡했다고 하는 홍난파의가 그린 새 풀 옷을 입고 저기에서 오고 있는 봄처녀3월이 아닌 4월에 오는 것이 분명했다. 3월에는 아직 겨울옷에서 완전히 해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봄을 잊어야했다. 원래 봄은 희망의 계절인데, 선거에 얽매인 사람들에게는 고난의 계절’ ‘시련의 계절이었다. 게다가 천신만고의 고생 끝에 다행이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고생의 대가를 받지만, 떨어지면 돈 잃고 사람 잃고, 바보되고 패가망신하는 잔인한 계절이었다.

 

시장 선거에서 백상무 후보와 정국영 후보는 막상막하, 백중지세였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 물고 뜯는 난투전은 더욱 심해졌다. 소위 네거티브 전략이었다. 상대의 약점과 잘못, 가식과 위선을 폭로하는 것이 주된 선거운동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치명적인 내용은 서로 간에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정국영 후보가 돈을 준 사건이 터졌다. 지역에서 노인회가 단체관광을 가는데,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정 후보가 관광을 떠나는 노인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고 인사를 했다.

 

어르신들! 평생을 바쳐 우리 지역을 위해 애쓰셨습니다. 어르신들 덕분에 우리 시는 대학도 유치하고, 공단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에서는 그동안 노인복지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이번에 여행 잘 다녀오시고, 앞으로 우리 시가 정말 진정한 노인복지행정을 펴도록 다 함께 노력하기를 바랍니다.”

 

노인회 총무에게 커피나 드시라고 하면서 몰래 100만원을 주었다. 노인회 총무는 그런 사실을 노인회 회장에게 이야기했다. 그렇지 않고 혼자 돈을 먹었다가 나중에 알려지면 도둑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회원 전체에게 공개해서는 선거법위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노인회장에게만 조용히 이야기하고, 돈은 관광 도중 노인들을 위해 먹을 것을 사서 주었다.

 

그러면서 그 음료수는 노인회장이 개인 돈으로 사는 거라고 둘러댔다. 이 때문에 노인회장은 자기 돈도 아니면서 정국영 시장 후보가 준 돈을 쓰면서 회원들로부터는 노인회장이 큰돈을 쓴 것처럼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았다. 그동안 돈 한푼 안쓰던 구두쇠가 어떻게 이렇게 큰돈을 쓰는지 놀랐다는 찬사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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