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10)
다시 강 교수의 젊은 시절로 돌아가보자. 강 교수는 결혼하고 나서 언젠가부터 한국 영화는 절대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부인 정혜가 한국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같이 영화관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같이 간 적이 있다.
영화가 너무 재미가 없어서 강 교수는 시작할 때부터 ‘The End’ 자막이 나올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도중에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성관계를 하고 골아떨어져 코를 고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마침 강 교수가 주인공과 비슷한 소리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정혜를 비롯한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코를 고는 소리로 알고 있다가 주인공이 일어나서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으로 바뀌었는데도 강 교수는 계속 똑 같은 강도로 코를 골고 있었다. 강 교수 주변의 관객들은 영화스피커가 고장난 것으로 잘못 알았다. 강 교수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탄 오토바이가 언덕을 올라가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세게 밟아서 부르릉 소리가 크게 날 때를 맞취서 방구를 세게 뀌었다. 이때는 영화 스피커소리와 똑 같아서 별 문제가 없었다.
“아니! 주인공이 코를 골던 장면은 끝나고,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타고 범인을 추격하고 있는데 왜 스피커에서는 코를 고는 소리가 계속 나느냐? 엉터리 영화다!”라고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강 교수는 잠에서 깨었다. 강 교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고 더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맞아요. 엉터리 영화다. 돈을 환불해주세요.”
옆에 있던 정혜의 얼굴이 빨개졌다. 정혜는 속으로, ‘이런 사기꾼 같은 인간이 내 남편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코를 골았으면 빨리 코골이수술을 해서 코를 골지 말아야지, 어떻게 지가 잘못해놓고 죄없는 영화관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하냐?’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서 정혜는 남편인 강 교수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당신이 코를 곤 걸 몰랐어요?” “무슨 말이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다 보고 있었는데. 내 바로 앞에 앉아있던 그 머리 하얀 남자가 코를 골아서 그런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아.”
이런 식으로 한국 영화를 싫어하니, 강 교수는 영화를 보아도 주인공 이름은 하나도 알 수 없고, 그들이 극중에서 하는 말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스토리도 뻔하고, 대사도 유치했다. 그걸 진지하게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재미 있고, 철학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는 정혜를 비롯한 젊은 남녀 쌍쌍의 모습을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강 교수는, ‘사람들의 수준은 이렇게 현저한 차이가 나는구나! 끼리끼리 사는 것이 편한데, 수준 차이가 나는 사람과 맞추어 산다는 것은 물과 기름이 섞이는 것처럼 불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정혜는, ‘사람이 배워봤자, 거기서 거기지, 무슨 차이가 난다고 저렇게 교만하고 건방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강 교수의 태도에 점점 정이 떨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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