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

 

‘그렇다고 외로워하지 마! 어차피 인생은 혼자인 거야.’ 다시 낙엽의 무리가 외쳤다. 미경은 그런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했다. 더 진한 외로움, 더 가득한 울분이 안에서 치밀어 올랐다.

 

미경은 학교 앞 호프집으로 갔다. 시끄러웠다. 음악도 빠르고, 무어라고 중얼거리는데, 가수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인생 아무 것도 아냐. 오늘이 중요해. 우리에게 내일은 없어.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봐. 그걸 하면 끝나는 거야. 왜 그렇게 심각한 거지. 이 바보야!’

 

힙합과 랩에서 이렇게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미경은 중얼거렸다. ‘여기가 한국인 거지? LA가 아닌 거지?’

 

미경은 맥주를 마셨다. 갑자기 취하고 싶었다. 그런데 맥주로 취하면 배가 나올 것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소주도 시켜 맥주와 섞었다. 안주는 노가리와 땅콩이었다.

 

미경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인생은 상대적인 거라 어린 여대생들 가운데 혼자 앉아 있으니, 미경의 인생은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늙어 눈치가 보였다. 얼굴은 몰라도 심장은 완전히 낡아빠져 사랑도 미움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경은 이제 45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대학교 앞에 와보니 완전히 나이 든 노인처럼 생각이 되었다. 할머니들이 손님으로 올 때는 미경도 어린 축에 속했는데, 대학교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젊은이들의 음성은 밝고 미소는 예쁘다. 미용실에 와서 자녀 자랑이나 하고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들과는 전혀 다르다. 미경은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기 때문이리라.

 

한 시간쯤 혼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있는데, 갑자기 강 교수가 호프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미경은 정신이 확 들었다. 강 교수는 미경을 보지 못한 채 호프집 가장 안쪽에 있는 칸막이로 들어갔다. 강 교수는 남학생 2명과 여학생 1명과 일행이었다. 그 여학생은 호리호리한 키에 무척 지적인 얼굴이었다.

 

미경은 그 여학생을 보자 순간적으로 심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아니 강 교수님은 왜 저렇게 어린 여학생을 데리고 술집으로 들어오는 걸까? 저렇게 어리고 팔팔한 여학생을 데리고 다니니 나 같이 늙은 여자는 아무래도 매력이 없겠지!’

 

미경은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으니 옆 테이블에서 대학생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요새 미술시장이 너무 상업적으로 변했어. 큰 일이야. 실제 비싼 값으로 팔리는 작품을 보면 내용은 별 것 아니잖아. 장사하는 사람들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장해서 그런 거지.”

 

“정말 맞아. 예술은 순수해야 해. 그렇지 않고 상업적으로 작품 가격이 매겨진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성을 상실하는 거야. 그리고 타락한 거지.”

 

“김환기 화백의 작품, Universe 5 작품은 132억원을 호가했어. 그리고 제프 쿤스의 은색 고철덩어리 ‘토끼’는 1000억원대에 팔렸어. 폴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피카소의 꿈(1932)도 모두 수천억원 대를 넘었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우리는 그런 혼탁한 시류에 휩쓸리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오직 그림만 그리자. 돈은 필요 없어. 원래 화가는 어렵게 살아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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