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0)

 

미경이 잠에서 깨자 강 교수는 미경을 데리고 부근에 있는 다른 레스토랑으로 갔다. 강 교수와 미경은 분위기 있는 와인바로 갔다. 강 교수는 술이 세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것 같았다. 미경은 자신이 교수와 단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미경에게 강 교수는 그야말로 모든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는 신적인 존재였다. 모든 행동도 모범적이고, 아무런 흠이 없었다. 심지어 잠자리에서도 상대에 대한 모든 배려를 하면서, 분위기 있게 필요한 범위에서만 하고 뒤처리를 하는 남자로 생각이 되었다.

 

미경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학에 대해 무조건적인 동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생도 아닌 교수님이라니, 그런 하늘 같은 존재인 교수님과 단둘이 사적으로 만나서 와인을 마시는 영광을 얻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다른 여자들과 달리 미경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미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포기하고 곧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용학원에 다닌 다음 취직했다. 미용실 일은 힘들었다. 특히 처음에 보조로 일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랬다. 조금만 잘못했어도 원장으로부터 눈물이 날 정도로 야단을 맞았다. 손님 머리를 잘못 잘라서 쫓겨날 뻔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가 멋을 부리고 미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은 미용실 보조로서 일하고 있으니 창피하기도 했다. 가끔 아는 친구들이 미경이 일하는 미용실에 손님으로 들어오면, 미경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서 그 친구가 갈 때까지 자리를 피하곤 했다.

 

특히 미경의 동창이 손님으로 왔는데, 같이 온 남자 친구가 대학생으로서 두꺼운 대학교 교재를 몇 권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해 미칠 정도였다. 원래 공부 못하는 학생이 두꺼운 책만 폼으로 들고 다닌다는 사실을 미경은 알지 못했다.

 

원장은 이런 미경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미경이 필요한 입장이어서 그런 것을 문제삼아 내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미경은 말하자면 자신이 대학교 3학년 나이가 되었을 때 우연히 남자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대학은 다니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대학교에서 매년 한 학년씩 올라가면 미경도 그에 따라 마음 속으로 학년이 올라갔다.

 

선우라는 남자 아이는 당시 그 지역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었다. 그는 법대를 다니고 있었다. 미경은 그 남자와 6개월 동안 사귀었다. 그러면서 첫경험도 했다. 선우는 미경을 아주 사랑했다.

 

선우는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미경에게 고시를 붙으면 결혼을 하자고 했다. 선우는 나중에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었다. 미경을 만나면 늘 외교관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외교관이 되면 한국에는 있을 시간이 없고, 미국, 프랑스, 이태리, 브라질, 뉴질랜드, 캐나다, 스페인, 러시아, 중국, 파푸아 뉴기니아 등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 같은 엘리트는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인도 같은 곳에서는 근무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경도 대사 부인으로서 해외 공관에서 외국 사람들과 늘 파티에 참석해야 하니까 영어 정도는 해두라고 했다. 미경은 그런 환상에 젖어 살았다. 그래서 미경도 영어회화책을 여러 권 샀다. 꾸준히 노력을 해서 미경도, 미국 사람을 만나면, ‘Hello. How are you?’ 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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