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3)

 

사람의 일상은 어느 날 한 순간에 방향이 크게 바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 교수는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잘 되어서 만족하고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연구도 열심히 하고, 강의도 잘해서 학생들에게 인기도 좋았다. 경영학 교수로서 기업체 자문활동도 해서 봉급 이외의 수입도 괜찮았다. 부잣집 딸과 결혼해서 경제적으로도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남들은 어려운 처갓집 생활비도 보태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강 교수는 그런 면에서 해방된 상태였다.

 

애정은 없고 섹스리스 상태로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정상적인 결혼상태고, 외모도 별로 손색이 없는 부인이 집에 존재하고 있다. 게다가 자립해서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는, 비록 연상이지만 번듯한 미경이 애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끔 양념으로 젊은 제자와 만나 연애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뿐 아니라, 청춘의 피를 수혈 받아 노화도 방지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강 교수는 나이에 비해 아주 젊게 보였다.

 

그리고 항상 원기가 넘쳐흘렀다. 고급화장품을 사용하고, 피부맛사지를 주기적으로 받았다. 초강도의 정력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정력에 좋다는 것은 아무리 비싸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강 교수는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교수로부터 전수받은 교훈, ‘젊었을 때 하고 싶은 대로 연애를 충분히 많이 하라. 성관계도 용불용설(用不用說)이니 젊었을 때 최대한 많이 하라. 그래야 늙어서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다!’을 헌법이나 기본법처럼 삶의 기본 원칙으로 받아들였다.

 

성경이나 불경에서도 혹시 성관계를 가급적 많이 하라는 취지의 구절이 있는지 며칠 동안 찾아보았지만 딱히 들어맞는 구절을 찾지 못했다.

 

옛날에 어떤 절에 다니는 보살님이 ‘육보시(肉普施)’를 해야 한다고 해서 한동안 들뜬 적이 있었지만, 그건 현실성이 없는 말이라는 것을 곧 깨닫고 포기하기도 했다.

 

이슬람교에서 부인을 4명까지 합법적으로 둘 수 있다고 해서 참 좋은 제도라고 감탄을 하고 본격적으로 그 제도에 대해 연구를 했다. 그랬더니, 그 제도는 첫 번째 부인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한 것이고, 부인 4명을 모두 똑 같은 기준과 방법으로 부양하고 대우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명의 부인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또한 부인과 같이 있는 시간도 공평하게 배분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강 교수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나서 절대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건 사랑이나 성적 관계도 아니고, 강제노역이나 가택연금을 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리고 젊었을 때는 좋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애정이 없는 상태에서 이집 저집 골고루 나누어 봉사를 하러 다니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강교수는 형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로 해놓고, 비공식적으로 첫 번째 부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비밀리에 애인을 두고 연애를 하는 것이 이슬람제도보다는 훨씬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현대사회의 성적 제도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일처일부제도 마찬가지로 일처다부제보다는 훨씬 더 여성에게 좋은 제도라고 어렴풋이 생각이 되었다. 사랑이나 애정은 물질과 달라서 절대로 나누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이때였다. 두 사람을 똑 같이 사랑한다는 말은 애당초 모순이다.

 

다만 두 사람을 똑 같은 강도로 미워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도 사랑과 증오는 천지차이였다.

 

이렇게 잘 나가던 교수가 부인의 사소한 접촉사고 인해서 한 순간에 모든 행복이 날아가버렸다. 그래서 행복은 새와 같다. 새처럼 가볍고 갑자기 날개를 펴고 멀리 날아가 버리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해는 질 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갑자기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행복은 그렇지 않다. 행복을 느끼는 것도 순간의 일이고, 행복을 상실하는 것도 순간의 일이다.

 

강 교수는 그동안 보았던 몇 가지 사건들이 떠올랐다. 어떤 사회 저명인사가 젊은 여자를 데리고 놀다가 강제추행죄, 위계간음죄, 강간죄 등으로 몰려서 추락한다.

 

고위공직자가 뇌물을 먹고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고 감방에서 동물처럼 신음한다. 무리한 투자를 했다가 거지가 된다. 모두 하루 아침에 추락하는 것이다. 추락하는 존재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창공을 나는 비행기는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추락을 면치 못한다.

 

강 교수는 아주 사소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거대한 쓰나미에 휩쓸려가다가, 자신의 영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진흙구덩이로 내동이쳐진 것이었다.

 

사랑하던 미경도 만나지 못하고, 어린 제자와도 데이트할 수 없게 되었고, 더러운 불륜현장의 더러운 신음소리까지 확인한 부인과 같은 집에서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

 


'작은 운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운명 (25)  (0) 2020.02.06
작은 운명 (24)  (0) 2020.02.05
작은 운명 (22)  (0) 2020.02.04
작은 운명 (21)  (0) 2020.02.03
작은 운명 (20)  (0) 2020.01.29

+ Recent posts